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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70 / 장흥고 터
* 명칭 장흥고 터 이명칭
개요 장흥고(長興庫) 터는 고려 및 조선 시대에 궁궐 안이나 궁궐 내 관공서에서 쓰이는 돗자리·유둔(油芚, 두꺼운 종이에 기름을 먹여서 방석처럼 깔고 앉게 만든 물건)·종이 등의 물품을 보관하거나 공급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인 장흥고가 있었던 곳이다.
설명 장흥고(長興庫)는 고려 및 조선 시대에 궁궐 안이나 궁궐 내 관공서에서 쓰이는 돗자리·유둔(油芚, 두꺼운 종이에 기름을 먹여서 방석처럼 깔고 앉게 만든 물건)·종이 등의 물품을 보관하거나 공급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고려시대에는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이 즉위하여 대부상고(大府上庫)를 장흥고로 개칭했다. 이 제도를 이어받아 조선이 개국하던 1392년(태조 1) 장흥고를 설치한 후, 1403년(태종 3) 흥신궁(興信宮)을 본 고와 합하였고 또 풍저창(豊儲倉)을 병합시켰다. 조선시대 장흥고의 관원으로는 사 1인, 부사 1인, 직장 2인, 주부 2인이 있었는데, 1414년 주부를 부직장으로 칭하였으며, 뒤에 다시 영(令, 종5품) 1인, 주부(종6품) 1인, 직장(종7품) 1인, 봉사(奉事, 종8품) 1인을 두어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그 뒤 다시 영을 없애고 제조(提調) 1인을 두었다. 이속(소속 서리)으로는 서원(書員) 6인, 고직(庫直) 6인, 사령(使令) 5인, 군사(軍士) 1인이 있었다. 조선시대 장흥고는 지금의 회현동1가·충무로1가·남대문로3가 일대에 걸쳐 있어서 이 부근을 ‘장흥곳골’ 또는 ‘장동(長洞)’이라 불렀다. 그러나 나중에 지금의 종로구 내자동과 적선동의 경계지역으로 이전했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역사정보 1392 장흥고 설치 1894 갑오개혁으로 장흥고 폐지
시대분류 조선/1392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충무로1가, 남대문로3가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충무로1가, 남대문로3가
시작일(발생일) 1392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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