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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67 / 귀록정 터
* 명칭 귀록정 터 이명칭
개요 귀록정(歸鹿亭) 터는 조선 영조 때의 문신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이 남산 아래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딴 정자인 ‘귀록정’을 짓고 사계절의 풍치를 즐기던 곳이다.
설명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은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녹옹(鹿翁)이다. 영조 즉위의 일등공신 중 한 사람이었고, ‘이인좌의 난’을 평정할 때도 큰 공을 세웠으며, 탕평책을 주장하여 붕당에 끼지 않았다. 문집으로 《귀록집》이 있고 《해동가요》에 시조 한 수가 전한다. 귀록정(歸鹿亭) 터는 조현명이 남산 아래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딴 정자 ‘귀록정’을 짓고 사계절의 풍치를 즐기던 곳이다. 남산(南山)은 조선의 도읍으로 정할 초기부터 〈도성십영(都城十詠)〉 가운데 남산의 옛 이름을 딴 〈목멱상화(木覓賞花)〉라는 시가 있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났다. 그리고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도 남산의 뛰어난 풍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사대부들이 저택과 정자를 마련하여 독서와 풍류를 즐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현재 필동 막바지의 골짜기인 청학동(靑鶴洞)은 도성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다. 이 마을에는 중종 때의 문신으로 청학도인(靑鶴道人)을 자칭하던 문장가 이행(李荇)이 살면서 자주 시회(詩會)를 벌였다. 또 그의 증손인 이안눌(李安訥)도 지금 동국대학교 경내에 해당하는 곳에 단을 쌓고 석주(石洲) 권필(權韠)·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 시회를 즐겼는데, 근래까지도 그의 현손 이주진(李周鎭)이 각석(刻石)하여 기념한 ‘동악선생시단(東岳先生詩壇)’의 각자가 남아 있었다. 이렇듯 남산 기슭에는 귀록정 말고도 천우각(泉雨閣)·쌍회정(雙檜亭)·화수루(花樹樓)·재산루(在山樓)·홍엽루(紅葉樓)·녹천정(綠泉亭) 등 수많은 정자들이 있었다.
역사정보
시대분류 조선/1700년대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6길 40(필동2가 134-27)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시작일(발생일) 170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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