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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61 / 사의당 터
* 명칭 사의당 터 이명칭
개요 현재 충무로2가 뒤쪽의 언덕길에는 조선시대 풍산홍씨 가문의 대저택이 있었다. 100칸이나 되는 이 저택 속에 온돌 3칸 및 대청마루 4칸이 딸린 총 11칸 건물의 사의당(四宜堂)이 있었다. ‘사의당’이란 말은 이 단독건물을 가리키는 말이자 건물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이곳은 이 사의당이 있었던 집터이다.
설명 사의당(四宜堂)의 연원은 매우 깊다. 인조의 딸인 정명공주(貞明公主)와 혼인한 홍주원(洪柱元)에서 출발해 홍만회(洪萬恢, 1643~1709), 홍중성(洪重聖), 홍진보(洪鎭輔), 홍양호(洪良浩), 홍낙원(洪樂源)을 거쳐 홍경모(洪敬謨)까지, 이들 풍산홍씨가 가문 7대에 걸쳐 150년 동안 살았던 집이 바로 사의당이다. 사의당에 대한 기록으로는 홍경모의 《사의당지(四宜堂志)》가 있다. 여기에 따르면 이 집은 원래 인조가 정명공주에게 내린 것을 공주가 다시 홍만회에게 주며 집을 고쳐 살도록 했다고 한다. 저택의 규모는 대단했다. 전체 100칸이나 되는 정당(正堂)을 중심으로 그 서쪽에는 1칸 온돌방인 수약당(守約堂), 북쪽에는 온돌 2칸, 대청마루 1칸인 북하당(北下堂), 동편 뒤쪽에는 후당(後堂) 등의 부속 건물채가 있었다. 아울러 이외에도 5개 들보가 있는 11칸 건물에 온돌이 3칸, 대청마루가 4칸인 사의당이 있었다고 한다. 사의당은 이 단독건물을 가리키는 말이자 건물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이 대저택은 정당보다는 사의당이 중심이어서 다른 곳보다 더욱 화려하게 꾸며졌다. 정원 계단에는 나무를 많이 심고 기암괴석들로 인공산을 꾸몄다. 이런 괴석 중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태호석(汰湖石)이란 돌도 있었다. 또한 사의당 건물 내부에도 갖은 진귀한 물건과 골동품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이 중에는 고대 중국의 비석 탁본, 조선의 역대 명가 글씨첩, 서양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천문관측을 겸한 자명종, 자단(紫檀)이란 최고급 목재로 만든 벼루, 군자배와 유리배라는 최고급 술잔도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청동제 불상도 비치했으며, 중국인이 만든 백우선(白羽扇)이란 부채도 있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경화세족(京華世族, 도성에 살면서 화려한 귀족생활을 즐기던 세도가)’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사의당과 같은 대저택을 짓고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도성 내에서 유명한 저택으로는 사의당 외에 신위(申緯)의 벽로방(碧蘆舫), 심상규(沈象奎)의 가성각(嘉聲閣), 김조순(金祖淳)의 옥호산방(玉壺山房) 등이 있었다.
역사정보 1671 정명공주가 내린 집을 홍만회가 고쳐서 살기 시작
시대분류 조선/1671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시작일(발생일) 1671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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