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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57 / 일본공사관 터
* 명칭 일본공사관 터 이명칭
개요 일본공사관(日本公使館)은 1884년 갑신정변으로 기존의 공사관이 불타자 이곳에 새로 건물을 짓고 옮겨왔다. 그 후 이 일본공사관은 통감관저(統監官邸), 총독관저(總督官邸)로도 사용되었다. 현재 이 자리에는 2010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운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이 서 있다.
설명 일본공사관이 자리잡기 이전 이곳에는 조선 철종 때 문신 박영원(朴永元)이 지은 녹천정(綠泉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그러다가 1884년 갑신정변으로 일본공사관이 불타자 정자를 허물고 이곳에다 일본공사관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에는 통감관저, 총독관저로 사용되었다. 일본공사로서 이곳에 입주한 사람 중 특기할 만한 인물은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이다. 그는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기기 10년 전인 1900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7년 동안 머물면서 1904년 한일의정서와 한일협약,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데 앞장섰다. 그 공로로 일제는 남작의 작위를 내리고,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까지 이곳에 세워주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1906년부터 이곳은 다시 통감관저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10년 당시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와 대한제국의 총리대신 이완용이 통감관저 2층에서 ‘병합조약’을 불법적으로 조인했다. 이 조약 체결 이후 한국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바뀌면서, 이곳 역시 통감관저에서 총독관저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총독관저로 사용되던 이곳은 1939년 9월 제9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경복궁 후원 경무대에 총독관저를 신축한 뒤, 여기에 있던 건물은 병합조약을 기념하고 역대 통감과 총독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시정기념관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경술국치 이후 29년간 일본 식민통치의 본산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치욕의 현장이다. 광복 후 이곳은 국립민족박물관, 국립박물관 남산분관, 연합참모본부 청사 등으로 사용되다가 철거되었다. 현재는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신영복이 쓰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운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이 서 있다.
역사정보 1851 박영원이 녹천정 건립 1884 갑신정변으로 일본공사관이 불타자 이곳에 공사관을 건립 1906 통감관저로 사용 1910 총독관저로 사용 1940~1945 역대 통감과 총독의 업적을 기리는 시정기념관으로 사용 1945 국립민족박물관, 국립박물관 남산분관, 연합참모본부 청사 등으로 사용되다가 철거 2010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을 세움
시대분류 대한제국/1884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6가길 6(예장동 2-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시작일(발생일) 1884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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