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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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정보 | JGH_000455 / 남산 천만궁 터 | ||
* 명칭 | 남산 천만궁 터 | 이명칭 | |
개요 | 남산(南山) 천만궁(天滿宮) 터는 경성신사(京城神社)의 섭사(攝祀, 제사(祭祀) 등 의례(儀禮)에 대한 일을 대리하여 시행하는 것) 신사인 천만궁이 있던 곳이다. 천만궁은 일본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의 귀족이자 학자, 한시인(漢詩人)이자 정치가였던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로서 1916년에 이 자리에 세워졌다. | ||
설명 | 천만궁(天滿宮)은 일본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의 귀족이자 학자, 한시인(漢詩人)이자 정치가였던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真]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우리나라의 서원에서 이름난 학자들을 제사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학문과 문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하라 미치자네는 일찍이 신격화된 인물이다. 이 사람은 참의(参議) 스가하라 고레요시[菅原是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살아생전 관직은 종2위 우대신(右大臣)에 올랐으며, 사후에는 정1위 태정대신(太政大臣)에 추증되었다. 충신으로 이름이 높았던 스가하라 미치자네는 우다천황(宇多天皇, 867~931, 재위 887~897)에게 중용되어 ‘간표의 치[寛平の治]’라 불리는 정치적 안정기를 이끌면서 우대신까지 올랐다. 그러나 좌대신 후지와라노 도키히라[藤原時平]의 참소로 죄를 얻어 다자이곤노소치[大宰権帥] 직으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사망했다. 사후에 잇따라 발생한 천재지변으로 조정은 그가 원령이 되어 저주를 내린 것으로 인식하고, 텐만텐진[天滿天神]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스가하라 미치자네를 모시는 신사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이곳에 세워졌다. 아울러 이 신사는 노기신사[乃木神社]와 함께 경성신사의 섭사 신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 신사에서는 곧잘 보통학교 학생들의 습자대회가 열렸다. 즉, 스가하라 미치자네가 천황으로부터 어사주를 받고 감격해서 지은 시가 있는데, 이 시를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보통학교 아이들로 하여금 받아쓰게 함으로써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주입시킬 목적이었다. 남산 천만궁도 경성신사와 마찬가지로 광복과 동시에 철폐되었다. | ||
역사정보 | 1916 남산 천만궁 건립 1945 광복과 함께 철폐 | ||
시대분류 | 일제강점기/1916 | ||
주제분류 |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 ||
지번주소 | |||
도로명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2길 10(예장동 8-3) 일대 |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 ||
시작일(발생일) | 1916년 |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