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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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정보 | JGH_000453 / 김익상의사 의거 터 | ||
* 명칭 | 김익상의사 의거 터 | 이명칭 | |
개요 | 김익상의사(金益相義士) 의거(義擧) 터는 1921년 9월 12일 의열단원(義烈團員) 김익상(金益相, 1895~1925) 의사가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곳이다. | ||
설명 | 김익상(金益相, 1895~1925)은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서 교직에 종사하다가 서울에 올라와 광성연초공사(廣城煙草公司)의 기계 감독으로 근무하던 중 1920년 만주 펑톈[奉天] 지점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에 만주 지린성(吉林省)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이다. 김원봉(金元鳳)·윤세주(尹世胄) 등 13명이 주동이 되어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벌였다. 일정한 본거지가 없이 각지에 흩어져 일본의 관청을 폭파하고 관리를 암살하여 일본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의열단에 가입한 김익상은 단장 김원봉으로부터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들을 암살하는 것이 조국 독립의 지름길이라는 말을 듣고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를 암살할 것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 1921년 9월 12일 전기수리공으로 가장하여 이 자리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으나 암살에는 실패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김익상은 다시 이듬해인 1922년 3월 28일 중국 시찰차 들어오는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암살하고자 상하이 세관부두에서 오성륜·이종암(李鍾岩) 등과 함께 권총으로 사격하고 폭탄을 던졌으나 또다시 실패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그 후 오성륜은 탈옥에 성공했으나 김익상은 일본 나가사키로 호송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감형되어 출옥하였으나, 1925년에 미행하던 일본 형사에게 살해되었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현재 중구 소파로 126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정문 왼쪽에 이곳이 김익상의사 의거 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다. | ||
역사정보 | 1895 김익상 출생 1921 조선총독부 폭파 및 총독 암살을 위한 폭탄투척 의거 1925 일본 형사에게 살해 당함 1962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
시대분류 | 일제강점기/1921 | ||
주제분류 | 문화/유적지, 사적지/독립유적지 | ||
지번주소 | |||
도로명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26(예장동 8-145) 일대 |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 ||
시작일(발생일) | 1921년 |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