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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49 / 영빈관 터
* 명칭 영빈관 터 이명칭
개요 영빈관(迎賓館) 건립은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이 국빈용 숙소를 따로 지으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면서 두 차례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67년에야 완공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1973년 경영난에 빠진 영빈관을 민간기업에 팔기로 결정하면서 영빈관은 삼성그룹 계열의 (주)호텔신라에 넘어갔다. 이후 5년여의 공사 끝에 1979년 3월 8일 지하 3층 지상 22층 규모의 신라호텔로 재탄생하게 되었으며, 최정상급 특급호텔로서 성업 중이다.
설명 영빈관(迎賓館) 부지는 유서 깊은 자리이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이 자리에 장충단(奬忠壇)이라는 제단이, 일제강점기에는 박문사(博文寺)라는 사찰이, 그리고 광복 후부터 1956년 동작동에 국립묘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국립묘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후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이 옛 박문사 본당(本堂) 자리에 국빈접대를 위한 영빈관을 지으라는 지시를 내려 신축공사가 시작되었으나,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면서 두 차례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2년 다시금 영빈관건축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중단되었던 공사가 재개되어 마침내 1967년에 준공되었다. 이때 건립된 영빈관은 국제관광공사가 맡아서 1972년까지 관리하지만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고 말았다. 한편 이보다 먼저인 196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영빈관 부지의 일부인 약 9만 2,000㎡가 삼성그룹 계열사인 (주)임페리얼에 불하된 사실이 있었다. (주)임페리얼은 이곳에다 즉시 신라호텔을 지었는데 이것이 (주)호텔신라의 전신이다. 1973년 정부는 경영난에 빠진 영빈관을 민간기업에 팔기로 결정, 영빈관은 삼성그룹 계열의 (주)호텔신라에 넘어갔다. 이에 (주)호텔신라 측에서는 대대적인 호텔 개편 및 확장공사에 착수, 5년여의 공사 끝에 1979년 3월 8일 지하 3층 지상 22층 연면적 6만 6,525㎡ 규모의 대형호텔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신라호텔은 최정상급 특급호텔로서 다양한 내외국인을 맞이하면서 성업 중이다.
역사정보 1959 이승만 대통령이 옛 박문사 터에 영빈관 신축공사 시작 1960~1961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면서 공사 중단 1967 영빈관 준공 1973 경영난에 빠진 영빈관을 삼성그룹 계열의 (주)임페리얼에 불하 1979 신라호텔 준공
시대분류 현대/1967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49(장충동2가 202)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967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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