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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47 / 장충단공원
* 명칭 장충단 공원 이명칭 남소영
개요 장충단 공원(獎忠壇公園)은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에 위치한 도시근린공원으로, 원래 대한제국의 현충 공간으로 설립된 장충단(獎忠壇)이 있던 곳이다. 1910년 국권피탈과 함께 일제가 장충단을 없애고 일본 군인들을 위한 추모공간으로 성격을 변질시켰다. 광복 후 일제가 설치한 시설은 즉각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남산공원의 일부가 되었다.
설명 장충단 공원(獎忠壇公園)이 위치한 지금의 장소는 원래 조선시대 왕궁을 호위하던 어영청(御營廳)의 분원인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장소였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 10월 27일, 고종(高宗)은 장충단(奬忠壇)을 마련하고 을미사변으로 순직한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 1841~1895)과 훈련대장 홍계훈(洪啓薰, 1842~1895)을 비롯한 장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현충 공간으로 꾸미고,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가 1908년부터 대한제국 정부에 장충단에서 지내는 제사를 중단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현충 공간인 장충단과 상관없는 기념식 등을 개최하면서 장충단의 역사적 의미를 변질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안중근(安重根, 1879~1910)에 의해서 저격을 당해 죽은 이후 장충단의 제사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제는 1919년 장충단과 동대문 근처의 훈련원(訓練院)과 하도감(下都監) 터를 묶어 공원운동장 조성계획을 발표하고, 그해 6월에 공원을 개원하였다. 일제는 공원에 각종 위락시설을 설치하고, 장충단 진입부 운동장에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어 일본색을 강화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제는 1930년대 들어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장충단 공원에 일제의 기념비 건립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1934년 경인철도합자회사 사장이었던 시부자와 에이치[澁澤榮一]의 송덕비가 세워졌고, 1937년 상해사변 때 전사한 일본인 병사들의 동상도 세워졌다. 또한 장충단 부근에는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박문사(博文寺)가 세워지기도 했다. 광복 후 일제가 세웠던 건물과 기념비들이 모두 철거되고,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공원은 서울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역사정보 1900 고종이 장충단을 세우고 본건물과 부속건물을 건립 1909 장충단의 제사는 완전히 폐지 1934 경인철도합자회사 사장 시부자와 에이치의 송덕비 건립 1945 광복 후 일제가 세웠던 건물과 기념비들은 모두 철거 1958 청계천 복개 시 수표교 이관 1969 장충단비 이전
시대분류 대한제국/1900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공원/도시공원(도시자연공원, 시민공원, 어린이공원 등)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10(장충동2가 197)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시작일(발생일) 1900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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