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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46 / 조선사편찬위원회 터
* 명칭 조선사편찬위원회 터 이명칭
개요 조선사편찬위원회(朝鮮史編纂委員會) 터는 일제강점기 일제의 어용연구기관인 조선사편찬위원회가 있던 자리이다. 일제는 우리나라 역사를 그들의 통치목적에 부합되도록 편찬하기 위해 1916년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朝鮮半島史編纂委員會)를 발족하고 1922년에 조선사편찬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 단체는 1925년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로 명칭이 바뀌고 조직도 확대 개편되었다가 1945년 광복 이후 해산되었다.
설명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일제는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朝鮮半島史編纂委員會)를 발족하고,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朝鮮史編纂委員會)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 조선사편찬위원회는 일본인의 우수성을 고취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배제할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이곳은 당시 조선사편찬위원회가 있던 자리였다. 일제는 그러나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학문적으로 더욱 권위 있는 기구로 만들기 위해 1925년 일황의 칙령으로 조선사편수회로 명칭을 바꾸고 독립된 관청으로 격상시키면서 조직도 확대 개편하였다. 이들 어용연구기관은 1910년부터 1937년까지 27년간 전국을 누비며 우리 민족의 사료(史料)를 광범위하게 수집했고, 전국의 도·군·경찰서 등 관청에도 협력할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그리하여 일제는 1932부터 1938년에 걸쳐 식민사관에 바탕한 《조선사((朝鮮史)》 37책,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20종, 《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 3책 등을 간행하였다. 조선사편수회가 주력한 것은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사대주의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특히 ‘단군조선’을 없애려고 편찬기구를 개편할 때마다 한국사의 상한선을 아래로 끌어내린 것만 보더라도 이들이 한국사 왜곡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상이 돋보이는 주요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축소 및 왜곡을 시도했다. 이 작업을 위해 일제는 현직 정무총감을 위원장급인 회장으로 앉혀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고, 고문으로는 친일파 이완용·권중현 등을 포진시킨 다음, 다수의 일본인 어용학자들을 연구자로 위촉하였다. 일제가 우리 민족사 연구에 끼친 해독은 심각했다. 특히 그들은 《조선사》 편찬 이후 전국에서 모은 사료의 원본에 대한 접근을 봉쇄하고 일부 사료들을 없애버려 해방 이후까지 민족사의 왜곡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조선사편수회는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해산의 운명을 맞았다. 현재 이 일대에는 서울예술대학 남산캠퍼스, 서울특별시 사회복지협의회 등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정보 1916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 발족 1922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개칭 1925 조선사편수회로 개칭하고 독립된 관청으로 격상되면서 조직을 확대 개편 1945 광복과 더불어 조선사편수회 해산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22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30(예장동 8-20)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시작일(발생일) 1922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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