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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39 / 교서관 터
* 명칭 교서관 터 이명칭 교서감 터
개요 교서관(校書館)은 조선시대 서적의 인쇄나 제사에 쓰이는 물품 등을 관장하던 관청으로, 1392년(태조 1)에 설치된 후 1777년(정조 1)에 규장각에 편입되었다. 교서관(校書館) 터는 교서관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숭의여자대학교 제1별관이 위치한 부근에 해당한다.
설명 교서관(校書館)은 조선시대 경서(經書)의 인쇄나, 제사 때 쓰이는 향(香)·축문(祝文)·인전(印篆) 등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교서감(校書監)을 설치하고 서적과 축문 관련업무를 관장하게 한 것이 교서관의 시작이다. 일명 운각(芸閣), 내서(內書), 외각(外閣) 등으로 불리었다. 교서관(校書館) 터는 그 교서관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0길 56에 해당한다. 교서관은 설치 당시에 교서감이라 불리었고, 태종(太宗) 때에 명칭이 교서관으로 바뀌었다. 세조(世祖) 때에는 전교서(典校署)로 불리다가 1484년(성종 15)에 교서관으로 재개칭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등재되었다. 원래 교서관은 남부(南部) 훈도방(薰陶坊)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의 중구 남산동2가 전 외교구락부 인근에 해당한다. 병자호란 뒤에 중부(中部) 정선방(貞善坊)으로 옮겼다가 후기에는 남부 낙선방(樂善坊)으로 이전하였다. 교서관의 관원들은 모두 문관이었으며, 전서체에 익숙한 3인을 품계에 따라 겸임하도록 하였다. 교서관의 판교(判校) 1인은 타관이 겸하고, 교리(校理) 1인과 별좌(別坐) 2인을 비롯 각급 직제에 걸쳐 모두 20여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1777년(정조 1)에 규장각 제학 서명응(徐命膺)의 건의에 따라 교서관은 규장각에 편입되었다. 이에 규장각을 내각(內閣)이라 하고, 속사(屬司)가 된 교서관을 외각(外閣)이라 하였다. 외각의 수장인 제조(提調)에는 내각 제학(提學)이, 부제조에는 내각 직제학(直提學)이, 교리에는 내각의 직각(直閣)이 겸임하여 내각의 주도 아래 운영되었다. 위치도 창덕궁 돈화문 밖으로 옮기게 되었다. 현재 중구 퇴계로20길 56에 해당하는 교서관 터는 조선 초기부터 병자호란 이전까지 교서관이 있던 자리이다. 위치는 숭의여자대학교 맞은편으로 지금의 숭의여자대학교 제1별관이 위치한 부근에 해당한다.
역사정보 1392 교서감 설치 1484 교서관으로 명칭 확정 1777 규장각에 편입
시대분류 조선/1392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0길 56(남산동2가 26-8)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2가
시작일(발생일) 13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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