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37 / 남산 단군굴
* 명칭 남산 단군굴 이명칭 남산 단군전, 남산 석굴
개요 남산(南山) 단군굴(檀君窟)은 대종교(大倧敎) 신자 박효달(朴孝達)과 그의 제자들이 1957년부터 50년 동안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영정(影幀) 및 우국지사들의 신위(神位)를 봉안하고 제사를 올리던 석굴이다. 옛 남산식물원 뒤편에 있었으나, 지금은 철폐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설명 남산(南山) 단군굴(檀君窟)은 남산 단군전(檀君殿) 또는 남산 석굴(石窟)이라고도 불렸다. 옛 남산식물원 뒤로 돌아 순환도로로 내려가는 산책길 오른편에 있었다. 1957년부터 함경남도 신흥(新興) 출신의 대종교(大倧敎) 신자 박효달(朴孝達)이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옆으로는 환웅상(桓雄像) 및 나라를 위해 희생한 우국지사들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던 석굴이다. 박효달은 일제강점기인 1943년부터 일제의 눈을 피해 자신의 집 벽장 속에다 단군을 모신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고는 광복 이후에는 일제에 의해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던 옛날을 생각해서라도 단군전(檀君殿)을 세워 민족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단군굴은 바위동굴로 내부는 너비 9척, 높이 12척, 길이 132척으로 10평 정도의 방이 있었다. 석굴 옆은 약수터가 있는 골짜기였다. 대종교 관련 기록에 의하면 이 석굴은 고대에 자연 생성된 것으로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세운 후 석굴 안에 일본의 개국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명치(明治) 천황의 위패를 안치하고 참배하는 자리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라는 주장도 있다. 남산 단군굴은 박효달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제자들에 의해 50년 동안 지켜지며 매년 두 차례, 개천절과 어천절(御天節, 음력 3월 15일로 대종교에서 단군이 지상에 내려온 지 216년 만에 다시 하늘로 올라간 일을 기념하는 날)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2006년 남산공원관리사업소에서 단군굴 주변에 녹지를 조성하면서 국유재산을 불법점유했다는 이유로 철폐하고 말았다. 현재 단군굴은 돌로 입구를 막아놓았지만, 이곳이 단군굴임을 알리는 표석과 ‘眞 참삶니’라고 새겨진 바윗돌이 남아 있어 그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짐작하도록 해준다.
역사정보 1957 대종교 신자 박효달에 의해 남산의 석굴에 건립 2006 남산공원관리사업소에 의해 철폐
시대분류 현대/1957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공원길 125-54(예장동 산5-6)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시작일(발생일) 1957년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