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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34 / 한양공원 터
* 명칭 한양공원 터 이명칭
개요 한양공원(漢陽公園) 터는 1910년 국권피탈 직전 일본 거류민단이 현재 남산공원(南山公園)에 해당하는 일부지역에 조성한 한양공원이 있던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공원 개장 당시 고종 황제가 친필로 써서 하사한 것을 돌에 새긴 표석(標石)만 남아 있다.
설명 남산(南山)은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큰 변화를 겪었다. 1910년 5월,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기 직전 우리나라에 와 있었던 일본 거류민단은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여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 이름지었다. 일제는 옛 남산식물원 부지에서부터 남대문에 이르는 남산 서북쪽 일대 100만㎡의 땅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공원 조성에 착수, 이때에 정식으로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고종 황제는 친필로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는 글씨를 써서 칙사를 통해 보내주면서 축하를 했다. 그러나 한양공원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제는 1916년 남산 전체를 공원화할 계획을 수립하고, 1918년에는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옛 남산식물원 일대에 건립하면서 기존에 있던 한양공원을 폐쇄했다. 현재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백범광장 쪽으로 가는 도로변에 서 있는 한양공원 표석은 공원 개장 당시 고종 황제가 보내준 친필 글씨를 돌에 새긴 것이다. 원래 표석의 위치는 남산3호터널 북쪽 출입구 근처였는데 터널을 뚫으며 현재의 자리에 옮긴 것이다. 이 표석은 한양공원이 문을 닫은 후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2002년 남산공원 숲 속에서 발견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앞면 고종 황제의 글씨 말고도 뒷면에 한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돌을 쪼아 지운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공원 조성 당시 협력자의 명단으로 보이는데, 광복 후 친일인사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의 소행으로 짐작된다.
역사정보 1910 국권피탈 직전 한양공원 개장 1918 조선신궁 건립으로 공원 폐쇄 2002 남산공원 숲속에서 한양공원 표석 발견
시대분류 대한제국/1910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57(회현동1가 산1-16)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시작일(발생일) 1910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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