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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28 / 이벽의 집터
* 명칭 이벽의 집터 이명칭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개요 조선 후기 천주교를 이끌었던 이벽(李蘗)이 살았던 집터이다. 이벽의 집은 한국 최초로 세례식이 거행된 곳으로 최초의 교회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집은 남아 있지 않고 집터를 추정하여 표지석을 세웠다. 정확한 고증에 따라 향후 표지석의 위치를 이전할 예정이다.
설명 이벽(李蘗, 1754~1786)의 호는 광암(曠巖), 자는 덕조(德祚)이다. 1754년(영조 30)에 대대로 무인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집안의 가풍을 잇지 않고 순수 학문에 뜻을 두고, 정약전(丁若銓)·정약용(丁若鏞) 형제 및 이승훈(李承薰) 등과 함께 천진암에서 강학 모임을 가지며 학문을 연구했다. 이벽은 이 모임에서 역관을 통해 수입되었던 서양학문에 관한 책들을 연구하고, 우주의 원리와 세상과 인간을 아우르는 철학적 사유를 나누었다. 강학 모임을 주도하던 이벽은 천주교 교리에 깊이 매료되어 체계적으로 종교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 무렵 이승훈이 북경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이벽은 그에게 세례를 받고 올 것을 적극 권유했다. 그리하여 1784년(정조 8) 봄, 북경에 도착한 이승훈은 이벽의 말에 따라 프랑스 출신 예수회의 그라몽(Grammont)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같은 해 겨울, 한국 최초의 세례자로서 조선으로 돌아온 이승훈은 이벽의 집에서 세례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이벽도 ‘세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권일신(權日身), 정약용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조선에서 최초로 거행된 세례식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시초이자, 자발적인 신앙공동체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이벽은 이후 천주교리를 널리 알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 천주교의 저변을 넓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1785년(정조 9), 이벽의 주도로 김범우(金範禹)의 집에서 신앙 모임을 가졌다가 적발되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형조로 압송되는 이른바 ‘추조적발사건(秋曹摘發事件)’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신앙모임은 즉시 중단되었고 이벽은 동료들과의 접촉이 차단된 채 자택에 감금당해 있다가 1785년(정조 9)에 사망하였다. 지금 이벽의 집은 남아 있지 않으나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기념하여 2011년 8월, 당시 교구장이던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지금의 자리에 표지석을 세웠다. 표지석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 정조 8년(1784년) 겨울, 이 수표교 근처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확한 고증에 따라 표지석의 위치는 향후 수표교 남쪽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역사정보 1784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식 거행 1785 이벽 순교 2011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도로 표지석 세워 기념
시대분류 조선/1784년 전후
주제분류 문화/인물/생가(터)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관수동 152-1)
지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
시작일(발생일) 1784년 전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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