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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26 / 칠패시장 터
* 명칭 칠패시장 터 이명칭
개요 칠패시장(七牌市場) 터는 지금의 서소문 밖에 있던 난전시장(亂廛市場)이 있던 곳이다. 칠패시장은 조선시대 이현(梨峴)·종가(鍾街) 등과 함께 서울의 가장 큰 상업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시전(市廛)과 마찬가지로 미곡, 포목, 어물 등을 비롯한 각종 물품이 매매되던 곳으로,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36 일대에 해당한다.
설명 칠패시장(七牌市場)은 조선시대 한양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등록되지 않은 자나 허가받지 않은 상행위가 이루어졌던 난전시장(亂廛市場)의 하나이다. 각종 물품이 매매되던 칠패시장은 어물전이 유명하였다. 칠패는 남대문과 서소문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사람들의 출입이 용이하였고, 용산·마포 등과도 가까워 어물의 반입이 쉬웠기 때문이다. 칠패시장 터는 그 시장이 있었던 곳이다. 칠패시장이란 명칭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른 조선 후기에 남대문 밖의 칠패에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시장이 생긴 것에서 유래한다. 칠패는 조선 후기 훈련도감(訓鍊都監)이나 어영청(御營廳) 등이 한성부(漢城府)를 8패로 나누어 순찰하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곧 어영청의 칠패가 남대문 밖에서부터 청파와 마포, 용산 지역의 순찰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남대문 밖에 칠패의 초소인 복처(伏處,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밤에 지키던 곳)가 있었기 때문이다. 칠패시장은 18세기 전반기에 이미 대규모의 시장으로 발전하여 시전(市廛)의 중심지이던 종로시전을 넘어서고 있었다. 칠패는 형성 단계부터 불법으로 취급된 난전시장으로서, 칠패 상인들의 활동은 금난전권(禁難廛權)을 가진 시전상인들의 강력한 규제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시전에서 어물을 많이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물전 상인들의 견제와 통제가 매우 심하였다. 이에 칠패 상인들은 금난전권의 규제를 피하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직접 지방에 내려가 어물 등의 상품을 구입하거나, 지방에서 들어오는 어물을 중간에 매점하여 도산매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칠패 상인들이 이런 방법으로 상품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물가를 마음대로 조정하게 되자 시전 상인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칠패 상인들은 자본과 조직을 바탕으로 물품의 구입과 확보, 판매 등에서 시전상인들을 압도하여 서울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칠패시장 터는 그 칠패시장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중구 봉래동1가 48번지 일대에 해당한다.
역사정보 18세기 칠패시장 형성
시대분류 조선/1700년대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36(봉래동1가 48-3)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1가
시작일(발생일) 17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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