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25 / 남지 터
* 명칭 남지 터 이명칭
개요 남지(南池)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숭례문 남쪽에 있던 큰 연못이 있던 자리이다. 남지라는 이름은 서울 남쪽에 있는 연못인 데서 유래하였다. 또 연(蓮)을 심어 유명하였기 때문에 연지(蓮池)라고도 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46 일대에 해당한다.
설명 남지(南池)는 서울특별시 중구 숭례문 바깥 남쪽에 있던 큰 연못으로, 서울의 남쪽에 있던 연못인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또한 연(蓮)이 유명하였기 때문에 연지(蓮池)라고도 하였다. 남지는 한양 숭례문(崇禮門) 밖에 있던 인공 연못으로, 조선의 풍수사상을 엿볼 수 있는 시설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연못은 화재에 대비한 방화수의 역할을 했는데, 여기에는 풍수지리에 입각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풍수적 관점에서 볼 때, 경복궁은 한양 남쪽에 있는 관악산의 화기(火氣)에 노출되어 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인공 연못인 남지를 만든 것인데, 남지 터는 바로 그 연못이 있던 자리이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46 일대에 해당한다. 한편, 남지와 관련하여 조선 중종(中宗) 때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와 관련된 일화가 전해온다. 그는 자신의 출세나 권세를 시기하는 사람을 고자질하거나 탄핵하여 벼슬에서 내쫓고 귀양을 보내곤 하였다. 이렇게 화를 입은 사람이 정승·판서에서 사림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에 달하였다. 그가 죽자, 남대문 밖에 있던 그의 집에 사람들이 몰려가서 집을 부수고 터를 파내어 연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남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서울에는 큰 연못이 3곳에 있었다. 고지도상에 남지는 숭례문 밖에 위치하고, 서지(西池)는 돈의문(敦義門) 밖에 위치하였으며, 동지(東池)는 흥인지문(興仁之門) 부근에 위치하였다. 이 3개의 연못은 장원서(掌苑暑)에서 관리하였다. 3개의 연못은 모두 연꽃이 피는 연못[蓮池]이었는데, 특히 남지가 있던 이 일대는 조선시대 명승지로도 유명했다. 1927년 남지 터 일대에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를 진행할 때, 청동용머리의 거북[靑銅龍頭龜]이 발견되었는데, 청동용머리의 거북 안에서 불과 물이 쓰여 있는 종이가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종이 한가운데에는 화(火)자가 씌어 있고, 주위를 수(水)자가 둘러싸고 있었다고 하는데, 남지 터에서 발견된 이 유물을 통해 남지의 조성 목적이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사정보 1927 남지 터 일대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를 진행, 청동용두의 거북 발견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46(봉래동1가 4-2)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1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