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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11 / 창동천 전도감교 터
* 명칭 창동천 전도감교 터 이명칭
개요 창동천 전도감교(倉洞川 錢都監橋) 터는 창동천 위에 놓인 전도감교가 있던 곳이다. 창동천(倉洞川)은 남산 서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시청 앞을 지나 무교와 소광교를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개천으로,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의 창고가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현재 대부분의 청계천 지류가 복개되어 창동천이나 전도감교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설명 창동천 전도감교(倉洞川 錢都監橋) 터는 창동천 위에 놓인 전도감교가 있던 곳으로 서울광장에서 숭례문으로 가는 길목인 지금의 세종대로18길 6-1 일대에 놓여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동천은 남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선혜청(宣惠廳)을 지나 청계천 본류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창동수(倉洞水) 또는 창동천수(倉洞川水)라고도 했다. 오늘날 밀레니엄 서울힐튼 부근에서 발원하여 을지로를 가로질러 정릉동천과 합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도감교(錢都監橋)는 창동천 위에 놓였던 다리로, 전도감(錢都監)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줄여 전교(錢橋)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시대 청계천의 지류인 창동천에 놓여 있던 다리는 13개 정도였다. 그 가운데 이름이 확인되는 경우는 전도감교를 비롯해 수각교(水閣橋), 미장동교(美墻洞橋)뿐이다. 전도감교는 그 주변에 소재하고 있었던 주전도감(鑄錢都監)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주전도감은 고려시대의 화폐를 주조하던 관청이고, 조선시대에는 주전소(鑄錢所)가 따로 있었다. 조선시대 주전소는 상설관청이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관련 내용을 간간이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1731년(영조 7)에 영조(英祖)가 흉년에 대한 대책으로 호조와 진휼청(賑恤廳)에 명하여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도록 한 기록과, 1807년(순조 7)에 순조(純祖)가 균역청(均役廳)에 주전소를 설치하고 30만 냥의 주조를 명령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청계천 지류가 복개되어 창동천이나 전도감교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정보 조선시대 창동천 전도감교 설치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18길 6-1(태평로2가 54)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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