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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404 / 김종서 집터
* 명칭 김종서 집터 이명칭
개요 김종서(金宗瑞, 1383~1453) 집터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서의 집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16 일대에 해당한다. 김종서는 세종(世宗) 때 6진(六鎭) 개척을 주도하여 두만강 이남을 조선의 국토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희생됐다. 현재 이곳에는 농업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1992년 김종서 집터 표지석이 설치되었다.
설명 김종서(金宗瑞, 1383~1453) 집터는 김종서가 살았던 집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16 일대에 해당한다.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정치가로, 문무에 걸쳐 활약했으며 여진족을 물리쳐 6진(六鎭)을 개척한 인물이다. 도총제(都摠制)를 지낸 김추(金錘)의 아들로 1383년(고려 우왕 9) 양광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사간원(司諫院) 우정언(右正言)·진제경차관(賑濟敬差官)·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1433년(세종 15) 함길도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가 되어 여진족의 변경침입을 격퇴했고, 여진족에 대한 대비책으로 비변책을 지어 건의했다. 함길도에 8년 동안 머물면서 6진을 개척하고, 남방의 백성을 이주해 오도록 하여 북방경계를 두만강 이남으로 확정짓는데 큰 공을 세웠다. 1449년(세종 31) 권제(權踶) 등이 수교(讐校)한 《고려사(高麗史)》가 공정하지 못하여 왕명으로 개찬하게 되자 지춘추관사(春秋館知事)로 그 총책임을 맡았다. 1451년(문종 1) 《고려사(高麗事)》를 찬진(撰進, 글을 지어 왕에게 올리는 것), 이듬해인 1452년(문종 2)《세종실록(世宗實錄)》 총재관을 거쳐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찬진하였다. 김종서는 문종(文宗)이 승하하기 전에 좌의정이 되었고, 문종의 명을 받들어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등과 함께 어린 단종을 보필했다. 1453년(단종 1)에 수양대군에 의해 두 아들과 함께 격살되고, 대역모반죄로 효시됨으로써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1746년(영조 22)에 복관되었으며 충익(忠翼)의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제승방략(制勝方略)》이 있다. 김종서 집터는 조선 후기 고마청(雇馬廳)이 소재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1992년 농업박물관 앞에 김종서 집터 표지석이 설치되었다.
역사정보 1383 김종서 출생 1405 문과 급제 1433 함길도도관찰사 1449 지춘추관사 1453 김종서 사망 1746 복관, 충익의 시호를 받음 1992 김종서 집터 표지석 설치
시대분류 조선/1400년 전후
주제분류 문화/인물/생가(터)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16(충정로1가 75-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충정로1가
시작일(발생일) 1400년 전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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