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03 /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 명칭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이명칭
개요 조선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 윤택영(尹澤榮, 1876~1935)이 1907년경에 지은 재실(齋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원래 제기동 224번지에 있었는데, 1996년에 남산골 한옥마을이 조성되면서 이전 복원되었다. 1977년 9월 5일 서울시 민속문화재 24호로 지정되었다.
설명 윤택영은 대한제국 시기에 지돈녕사사(知敦寧司事), 황후궁대부(皇后宮大夫) 등을 지낸 고위 관리로서, 일제에 의해 후작 작위를 받은 사람이다. 대한제국 궁내부 대신으로서 일제강점기 자작 작위를 받고 말년에는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윤덕영(尹德榮, 1873~1940)이 그의 형이다. 이 가옥은 윤택영이 그의 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가 1906년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의 비로 책봉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무렵 지은 재실이다. 그러므로 이 가옥은 일반적인 살림집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의 숙식과 제사음식을 장만하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 건축면적 257㎡의 집 평면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원(元)자 형태이며, 제일 윗터에 사당을 두고 그 아랫터에는 본채와 행랑채를 두었다. 원래 사당은 임금이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경운궁을 헐어낼 때 나온 재료들을 이용하여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윗터의 사당은 4·19혁명 당시 불에 타 사라졌으나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하면서 복원하였다. 사당은 1칸 집으로 2단의 석축(石築)을 쌓아 본채보다 2단 높게 지었고 화계(花階, 층계 모양으로 단을 만들어 꾸며놓은 정원시설)를 만들었다. 본채 앞에는 대문을 두고 그 옆에 행랑채를 두었다. 본채에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누마루 등을 배치하였다. 몸채는 일고주오량가(一高柱五樑架)이고, 앞채는 삼량가(三樑架, 도리가 3개 있는 지붕구조)이다. 길고 큰 돌로 기단(基壇)을 쌓고 네모형의 초석(礎石)과 굴도리를 사용하여 집을 높여 격식을 부렸다. 안방과 사랑방은 대청을 마주 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고위관료나 양반들이 가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지었던 재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1977년 9월 5일 서울시 민속문화재 24호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남산골 한옥마을이 조성되면서 이전 복원되었다.
역사정보 1907 건축 1977 서울시 민속문화재 24호로 지정 1996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 복원
시대분류 대한제국/1907년 무렵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고가옥, 관아건축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필동2가 84-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시작일(발생일) 1907년 무렵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