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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93 / 손탁호텔 터
* 명칭 손탁호텔 터 이명칭 손탁빈관 터
개요 손탁호텔(孫澤호텔) 터는 구한말과 대한제국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손탁(孫澤, Antoniette Sontag, 1854~1922)이 설립한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6에 해당한다. 손탁호텔이 있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이화여자고등학교 내 심슨기념관 앞 주차장입구에 세워져 있다.
설명 손탁호텔(孫澤호텔)은 1902년 구한말과 대한제국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손탁(孫澤, Antoniette Sontag, 1854~1922)이 중구 정동에 설립한 근대식 호텔이다. 1902년 대한제국 정부는 내탕금(內帑金, 왕의 사사로운 돈)으로 손탁빈관(孫鐸賓館)을 헐고 그 자리에 2층 양관을 신축하여 손탁에게 경영을 위탁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손탁은 1885년(고종 22) 10월 초대 주한 러시아공사 베베르(Karl Ivanovich Veber)를 따라 내한하여 25년간 한국에서 생활하였다. 손탁은 궁내부와 러시아공사관의 연락관을 맡아 조선을 러시아와 밀착시키고, 청나라와는 멀리하도록 반청운동을 막후에서 부추겼다. 1896년(고종 33)의 아관파천은 손탁의 이 같은 노력의 결과였다. 한편, 그에 앞서 1895년(고종 32) 고종은 손탁의 노력을 인정하여 정동에 3,907.2㎡ 대지에 방 5칸의 양관을 지어서 하사하였다. 이에 손탁은 손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양관의 실내를 서구풍으로 꾸몄는데, 이 양관이 바로 손탁빈관이다. 이는 한국 초기의 서구식 호텔영업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객실 5개의 양관은 호텔영업으로는 너무 협소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의 대외관계가 점차 다변화되고 외국 귀빈들의 방한이 빈번해짐에 따라 이들을 접대하고 숙박시킬 영빈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더욱이 당시 서울에는 외국인전용호텔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1902년 10월, 구 양관을 헐어 2층 양관을 신축하고 손탁으로 하여금 경영하게 하였다. 이것이 손탁호텔이었다. 손탁호텔은 거액의 내탕금으로 신축했기에 사실상 한국정부 직영호텔인 셈이었다. 호텔 2층은 국빈용 객실로 이용되었고, 아래층은 일반 외국인 객실 또는 주방, 식당, 커피숍으로 이용되었다. 손탁호텔은 서양요리와 호텔식 커피숍 경영의 효시이기도 하였다. 손탁이 한국을 떠난 뒤 1917년 이화학당이 손탁호텔을 매입하여 기숙사로 사용하다가 1922년 손탁호텔을 허물고 프라이홀(Frey Hall)을 신축하였다. 프라이홀은 1975년 화재로 소실되어 사라지고, 지금은 공터로 남아 있다. 손탁호텔 터는 그 손탁호텔이 위치하고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6에 해당한다. 이화여자고등학교 내 심슨기념관 앞 주차장입구에 손탁호텔이 있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역사정보 1895 한옥 1채(현 이화여자고등학교) 하사 1898 고종황제가 구 한옥을 헐고 양관(방 5개) 지어 하사 1902 구 양관을 헐고 2층 양관 신축, 손탁이 영빈관을 경영 1917 이화학당 손탁호텔 매입 1922 손탁호텔 철거
시대분류 대한제국/1895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6(정동 32)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895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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