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76 / 덕수궁 석어당
* 명칭 덕수궁 석어당 이명칭
개요 덕수궁(德壽宮) 석어당(昔御堂)은 덕수궁에 있는 2층 목조건물로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宣祖)가 한양으로 돌아와 임시로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의 전각은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설명 덕수궁(德壽宮) 석어당(昔御堂)은 임진왜란으로 피난을 갔다 돌아와 선조(宣祖)가 시어소(時御所,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곳)로 삼았던 장소로, 승하할 때까지 16년간을 거처하던 곳이다. 이곳은 광해군(光海君)에 의해 유폐된 인목대비(仁穆大妃)가 10여 년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직후 인조(仁祖)는 석어당에 있던 인목대비를 찾아갔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뒤 인조는 석어당과 즉조당(卽阼堂)만을 남기고 덕수궁 일대의 건물들을 옛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없앴다. 법전(法殿)인 중화전(中和殿)의 동북쪽에 위치한 석어당은 현재 덕수궁에 남아있는 목조건물 중에 유일한 2층 전각이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다른 건물들과 함께 중건한 것이다. 석어당은 팔작지붕에 1층은 정면 8칸 측면 3칸, 2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1층 내부 서쪽에서 있으며, 2층은 누마루로 되어 있다. 건물 뒤쪽에는 가퇴(假退, 집의 벽 밖으로 조그맣게 달아낸 칸살)를 덧달아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석어당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궁궐 건축과는 달리 권위적이지 않아 민간건물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붕에는 망와(望瓦, 지붕의 마루 끝에 세우는 암막새) 외에 장식기와나 잡상(雜像) 등의 다른 장식을 얹지 않았다. 그러나 1904년 석어당을 중건할 때 건물에 얽힌 우여곡절과 특별한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단청(丹靑)을 하지 않은 백골(白骨)집으로 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석어당은 1618년(광해군 10)의 인목대비 폐위와 1623년(인조 1)의 인조반정 등 파란만장한 조선의 역사적 굴곡을 온몸으로 떠안고 있는 건물이다. 조선시대의 건축미학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건축학적 가치와 별개로 석어당의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역사정보 1593 선조가 시어소로 삼음 1608 선조 승하 1618 인목대비 유폐 1623 인조반정 1904 덕수궁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
시대분류 대한제국/1904(중건)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궁궐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정동 5-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904년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