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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71 / 대한문
* 명칭 대한문 이명칭 대안문
개요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德壽宮)의 정문이다. 1906년 경운궁(慶運宮, 현 덕수궁)의 정문이었던 대안문(大安門)을 수리해서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설명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德壽宮)의 정문으로 동쪽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행궁(行宮)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리다가, 1907년 고종(高宗)이 순종(純宗)에게 양위하고 계속 이곳에서 거처하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에서 그 궁호를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궁호가 바뀌기 전인 1902년에 경운궁을 중건할 때 동쪽에 대안문(大安門)을 세우면서 정문으로 삼았다. 이후 1906년에 정문이었던 대안문을 수리하여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문은 수리 과정에서 건축양식도 크게 변했다. 단청을 한 겹처마 형식을 갖추고, 양성(兩城, 지붕마루의 양쪽에 회반죽을 바른 벽, 지붕마루에 구조적인 측면과 위계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하얗게 회반죽을 발라서 마무리 한 것)한 지붕마루에는 취두(鷲頭, 전통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장식기와)·용두(龍頭, 용머리)·잡상(雜像,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 위 내림마루에 여러 가지 신상(神像)을 새겨 얹는 장식 기와)을 얹었다. 1914년 일제는 도로건설을 이유로 대한문을 중심으로 한 남·북쪽의 담장을 헐고 궁역을 축소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대한문도 궁 안쪽으로 옮겨졌다. 이후 1970년에 도시계획으로 또 한 번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 덕수궁의 대한문은 여러 차례의 이전 과정을 거치면서 일부 훼손된 측면이 있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격동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가치를 지닌다. 현재 대한문에서는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국왕이 거주하는 궁궐을 지키는 수문장의 임무교대를 덕수궁의 정문에서 재현한 것으로 조선시대 궁중 문화의 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
역사정보 1902 경운궁을 중건할 때 대안문을 세워 정문으로 함 1904 경운궁에 화재가 발생 1904~1906 경운궁을 다시 중건 1906 대안문을 수리하여 대한문으로 개명 1914 덕수궁 안쪽으로 이전 1970 현재의 위치로 이전
시대분류 대한제국/1902(최초건립), 대한제국/1906(개명)
주제분류 문화/축조물/문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정동 5-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902년, 1906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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