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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67 / 정동제일교회
* 명칭 정동제일교회 이명칭 정동교회, 정동감리교회, 서울정동교회, 벧엘예배당, 정동제일교회예배당
개요 정동제일교회(貞洞第一敎會)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가 세운 한국의 개신교 교회이다. 특히, 1897년 19세기 전원풍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건물은 초기 개신교 교회당의 모델이 되었으며, 1977년 그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설명 정동제일교회(貞洞第一敎會)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가 세운 한국의 개신교 교회이다. 한국선교회를 창설하고 배재학당(培材學堂)의 설립자이기도 했던 아펜젤러가 1885년 정동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4명의 한국인 교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이 교회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점차 교인 수가 늘어난 이 교회는 1887년 전용 교회 건물을 구입하여 ‘벧엘 예배당(Bethel Chapel)’이라 불렀으며, 1894년에 이르러서는 교인 수가 200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하고 1895년 9월에 착공하여 1897년 12월 26일에 봉헌식을 가졌다. 건축양식은 당시 미국 북동부에서 유행하던 전형적인 조지안 고딕 양식(Georgian Gothic Style)을 따랐으며, 맥길(Willian B. McGill)이 공사감독을 맡고, 조선인 건축가 심의석(沈宜碩)이 시공을 담당하고, 일본인 건축가 요시자와 토모타로[吉澤友太郞]가 설계를 맡았다. 정동제일교회는 특정 종교시설이라는 개념을 넘어 개화운동의 중심지이자 신문화를 수용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교회 주변에 있는 배재학당(培材學堂)·이화학당(梨花學堂)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사회문화 활동의 중심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1918년에는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고 성가대를 운영하여 김인식(金仁湜) 등의 음악가를 배출해내기도 했으며, 1919년 3·1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 중 정동제일교회의 목사였던 이필주(李弼柱)와 장로 박동완(朴東完)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의 정동제일교회는 처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이 아니다. 1917년 북쪽 측면을 확장하고, 1926년에는 570여㎡ 규모로 증개축 공사를 진행했고, 이때 종탑의 위치가 변동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초기의 십자가형태의 평면이 현재와 같은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이때 공사를 담당한 사람은 교회의 신자이자 정동 이화여고 심슨 기념관(당시 이화학당 심슨홀)의 증축공사를 담당했던 이명원(李明遠)이었다. 그리고 6·25전쟁 시기에는 건물의 일부분과 건물 안의 파이프오르간이 파손되어 1953년에는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1977년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역사정보 1885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의 집에서 예배 1887 전용 교회 건물을 구입(벧엘 예배당) 1895 서양식 예배당 공사 착공 1897 한국 최초 서양식 교회 완공 1917 북쪽 벽을 터서 교회당 확장 1918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 설치 1926 증개축 공사(이명원 담당) 1950 예배당 일부분 파손, 파이프오르간 파괴 1953 예배당중수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 1977 사적 제256호로 지정
시대분류 대한제국/1897
주제분류 문화/축조물/대형교회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정동 34-3)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897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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