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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55 / 구 러시아공사관
* 명칭 구 러시아공사관 이명칭
개요 구(舊) 러시아공사관(러시아公使館)은 1885년 러시아와 조선의 국교체결 이후 1890년에 이곳에 건립되었다. 1896년 친러 세력에 의해 고종과 세자가 이곳으로 피신한 것으로 유명한 아관파천(俄館播遷, 혹은 이필주어(移蹕駐御)라고도 함)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이곳은, 제정 러시아 붕괴 이후인 1925년에 소비에트 총영사관으로 명칭을 바꾸어 해방공간까지 사용되다가 1949년 공산정권이 들어선 북한으로 추방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건물이 파괴되어 지금은 전망탑만 남아 있다.
설명 구(舊) 러시아공사관(러시아公使館)은 1884년 러시아와 조선 사이에 조로수호통상조약(朝露修好通商條約)이 조인되어 두 나라 사이에 외교관계가 성립됨에 따라 189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원래 건물은 벽돌로 된 2층 구조로 한쪽으로 탑을 세웠으며 입구에는 개선문 형식의 아치문이 있었다. 이 건물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A.I.Sabatin, 1860~1921)이 설계를 맡았는데, 그는 1883년부터 조선정부에 고용되어 독립문·덕수궁 중명전 등 다수의 근대 서양식 건축물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높은 언덕에 르네상스식으로 건축된 러시아공사관은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았으며, 당초 부속건물이 추가로 4채 건축되었다.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있은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이곳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여 1년가량 머물게 되는데 이를 아관파천(俄館播遷, 혹은 이필주어(移蹕駐御)라고도 함)이라 한다. 이로써 개혁을 주도하던 친일내각은 친러내각으로 교체되었으며, 고종이 이곳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국제정치의 주요한 무대가 되었다. 이후 고종은 경운궁(慶運宮)으로 환궁하여 그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함에 따라 대한제국과 러시아는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이에 따라 공사관도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1906년 외교공관이 다시 개설되었으나, 이때는 1905년 일본에 의한 을사늑약의 강제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된 시기였으므로 이곳에는 공사(公使)가 아닌 러시아 영사(領事)가 체류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붕괴됨에 따라 러시아 영사관은 유명무실해지게 되었으나, 1925년 일본과 소비에트 러시아가 국교를 맺음에 따라 그해에 이곳에 다시 소비에트 총영사관을 개관했다. 1945년 광복 이후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해방공간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에는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소련 영사관은 북한으로 추방되고 이곳은 폐쇄되었다. 1950년 6·25전쟁의 여파로 외벽 일부와 3층 전망탑을 제외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다. 이후 전망탑만이 반파된 채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구 러시아공사관은 1969년 ‘양관(洋館)’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향토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고, 1973년에는 전망탑 부분에 대한 보존처리가 진행되었으며, 1977년 ‘구 러시아 공사관’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253호로 승격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1981년 이 일대의 발굴과정에서 러시아공사관의 지하층 구조가 밝혀졌는데, 이때 전망탑의 동북쪽에 지하통로로 알려진 유구(遺構)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통로는 덕수궁까지 연결되는 통로로 보이지는 않아 좀 더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역사정보 1884 조로수호통상조약으로 러시아와 조선 사이에 외교관계 성립 1890 러시아공사관 준공 1896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 발생 1897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 대한제국 선포 1904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함에 따라 러시아공사관 철수 1905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1906 러시아 총영사관 체류 1917 러시아혁명으로 제정 러시아 붕괴 1925 일본과 소비에트 러시아 국교 체결, 이곳에 소비에트 총영사관 개관 1949 소련 영사관 38선 이북으로 추방, 공사관 폐쇄 1950 6·25전쟁으로 구 러시아공사관 반파 1969 남은 전망탑 건물을 ‘양관’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향토문화재 제2호로 지정 1977 ‘구 러시아 공사관’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253호로 승격 1981 발굴조사에서 전망탑의 동북쪽에 덕수궁까지 연결되는 지하통로 발견
시대분류 대한제국/1890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1-18(정동 15-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890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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