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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52 / 구세군중앙회관(구 구세군사관학교)
* 명칭 구세군중앙회관(구 구세군사관학교) 이명칭
개요 구세군중앙회관(救世軍中央會館)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다. 구세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 1928년 영국 런던의 클랩튼 콩그레스 홀(Clapton Congress Hall)을 모델로 삼아 지어졌다. 건립 당시의 이름은 구세군사관학교(救世軍士官學校)였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설명 구세군중앙회관(救世軍中央會館)은 1928년에 완공된 건축물로, 구세군이 사관양성 및 선교와 사회사업을 위한 본부로 지은 것이다. 구세군(救世軍)은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와 그의 아내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가 창시한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호가드(Robert Hoggard) 사관과 부인 애니 존스(Annie Johns) 사관이 조선에 온 1908년 10월부터 한국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했다. 구세군중앙회관은 1926년 조선을 방문한 구세군 대장 브람웰 부스(Bramwell Booth)의 70세 생일을 기념해 미국 사관들과 구세군 신도들을 대상으로 모금한 의연금으로 건립됐다. 1927년 11월 착공하여 1928년 벽돌로 쌓은 2층 건물을 완공했다. 건립 당시의 이름은 구세군사관학교(救世軍士官學校)였다. 이 건물의 외관은 복잡한 장식이 배제되어 단순하지만 좌우대칭의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현관 앞의 기둥, ‘구세군사관학교’라고 새겨 넣은 정면 중앙 상부의 삼각형 박공, ‘해머빔(Hammer Beam)’이라고 하는 독특한 지붕짜임 등 건물 세부의 조화도 돋보인다. 특히 벽돌조의 외관과 중앙 현관의 4개의 기둥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이 충실히 반영돼있다. 건물은 건립 당시부터 1985년까지 구세군사관학교로 사용되었고, 1955년부터 1981년까지는 구세군 대한본영으로 함께 사용되었다. 1959년 건물 1층과 2층 일부를 증축하고 강당 천장을 높이는 공사를 한 후 구세군 대한본영의 사무실 일부가 입주했는데, 이때부터 ‘구세군중앙회관’으로 불리게 됐다. 일부 증축과 개조가 있기는 했지만, 건축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구세군중앙회관은 1920년대 후반 서울의 10대 건축물 중 하나에 꼽혔을 정도로 건축사적 의미가 깊다.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함께 경험한 구세군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됐다. 2014년 구세군 대한본영이 다시 중앙회관으로 이전했고, 구세군역사박물관으로도 함께 이용되고 있다.
역사정보 1928 완공, 구세군 사관학교로 사용 1955 구세군 대한본영으로 사용 1959 건물 일부 증·개축 2002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 2014 구세군 대한본영 이전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28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30(정동 1-23)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928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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