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50 / 덕수궁 중명전
* 명칭 덕수궁 중명전 이명칭
개요 덕수궁(德壽宮) 중명전(重明殿)은 1901년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것으로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이후 1904년 덕수궁의 화재로 고종의 집무실이자 외국사절 접견실로 사용되면서 중명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체결되고, 1907년 황태자(순종)와 윤비(尹妃)와의 가례(嘉禮)가 이곳에서 거행되는 등 대한제국 말기에 주요 정치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설명 덕수궁(德壽宮) 중명전(重明殿)은 덕수궁이 아직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릴 당시인 1901년 황실 도서관 용도로 지어진 것으로서, 궁중에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가, 1904년 덕수궁의 화재로 고종 황제가 이곳을 평상시 집무실 겸 외국사절의 접견실로 사용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뜻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대한제국 말기 주요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체결도 이곳에서 일어났고, 1907년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해 고종 황제가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했다가 일제에 의해 퇴위당하는 일도 이곳에서 일어났으며,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책봉 또한 이곳 덕수궁 중명전에서 거행되었다. 1910년 국권피탈 이후 덕수궁 권역은 일제에 의해 축소되었고, 1915년에는 외국인에게 임대되어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 외국인 사교 클럽인 경성구락부(Seoul Union Club)로 사용되었다. 또한 1925년에는 화재로 인해 외벽만 남기고 소실되었다가 다시 재건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원형을 잃었고, 1920년대 중명전 일대가 덕수궁 권역에서 제외되면서 주위의 전각이 훼손되는 등의 시련을 겪었다. 광복 후 1950년대 이승만 정부에서 중명전을 국유재산으로 편입하였고,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1963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영구귀국이 허가되면서 중명전을 그들 황실 일족에게 돌려주었다. 1976년 중명전은 다시 민간에 매각되었다가, 198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2003년에는 정동극장에 인계되었다가 2004년 다시 문화재청에 인수되었고, 2007년에는 중명전이 공식적으로 덕수궁에 편입되었다. 2009년 복원을 착수하여 2010년 공사를 완료하였고, 현재는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위탁 관리하고 있다.
역사정보 1901 ‘수옥헌’이란 명칭으로 경운궁 내에 서양식 건물을 지음 1904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 황제가 이곳을 집무실 겸 외국사절 접견실로 사용하면서 중명전으로 승격 1905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강제체결 1907 중명전에서 헤이그 특사 사건 발생 및 고종 퇴위, 순종 즉위 거행, 영친왕 황태자 책봉 1907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개칭 1915 덕수궁 중명전을 외국인에게 임대, 외국인 사교 클럽인 경성구락부(Seoul Union Club)로 사용 1925 화재로 인해 외벽만 남고 소실되어 재건축 1920년대 주위 전각의 훼손 및 덕수궁 권역 축소로 덕수궁 본궁 권역과 분리됨 1950년대 덕수궁 중명전 국유재산으로 편입 1963 영친왕, 이방자 여사 귀국허가 후 중명전을 황실 일족에게 증여 1976 중명전을 민간에 매각 1983 서울특별시 유명문화재 제53호로 지정 2004 문화재청이 중명전을 인수 2007 중명전이 사적 제124호 덕수궁으로 편입 2010 복원 공사 완료, 전시관 개관
시대분류 대한제국/1901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궁궐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1-11(정동 1-1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901년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