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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37 /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터
* 명칭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터 이명칭
개요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京城齒科醫學專門學校) 터는 경성치과의학교가 1929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개편되고 소공동으로 이전하면서 사용된 교사(校舍)가 있던 자리이다.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는 광복 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병합되었으며, 교사는 1969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한국은행이 들어섰다.
설명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京城齒科醫學專門學校)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의 현재 한국은행 자리로, 1929년에서 1969년까지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京城齒科醫學專門學校)의 교사(校舍)가 있던 곳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치과의사 양성은 1904년 세브란스병원에 설치된 치과에서 미국인 선교사의 지도 아래 시작됐다. 이후 본격적인 양성기관이 필요해짐에 따라 1922년 4월 경성치과의학교(京城齒科醫學校)가 설립되어 수업연한 2년의 야간제, 학생수 60명으로 개교했다. 이듬해에는 수업연한을 3년으로 연장하고 전임교수를 초빙해 주간으로 개편했다. 교사 및 실습실은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와 총독부의원의 건물을 같이 사용했으며, 1925년에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1925년 4월 ‘치과의사규칙’에 의거해 총독부 지정학교가 되면서 졸업생에게 무시험 개업의 특전이 주어졌다. 그러나 조선총독 명의로 발부받은 치과면허증은 국내와 만주에서는 통용됐지만 일본에서는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경성치과의학교는 1928년 9월 소공동 관유지(官有地)를 무상으로 임대받아 독립교사를 마련하여 이전했다. 이 자리에는 원래 선조(宣祖)의 후궁인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신위가 있던 저경궁(儲慶宮)이 있었다. 교사는 대지 2,200㎡, 건평 5,300㎡의 지상 4층 지하 1층의 건물이었다. 광복 후에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가 병합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이 계속 이용하다가 1969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이 종로구 연건동으로 이전할 때 헐리고 한국은행이 들어섰다. 경성치과의학교는 1928년 10월 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1929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되었으며, 4년제로 교수연한이 연장되고 정원도 100명으로 증원되었다. 그 해 가을에는 일본 문부성 지정 전문학교로 인가되었고, 이후 일본에서도 유효한 치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재학생의 구성은 한국인 40%에 일본인 60% 정도였으며, 초기에는 남녀공학이었으나 전문학교가 되면서 남학생만으로 운영했다. 의학교로는 1925년에서 1933년까지 8회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한국인 103명, 일본인 73명으로 총 176명의 졸업생을 냈다. 전문학교로는 1930년에서 1945년까지 17회에 걸쳐 한국인 452명, 일본인 1,007명으로 총 1,45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광복 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병합됐다.
역사정보 1922 경성치과의학교 설립 1928 소공동 경성치과의학교 교사 신축 1929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승격 1946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병합 1969 소공동 교사를 철거한 자리에 한국은행이 들어섬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29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09(소공동 110)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시작일(발생일) 1929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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