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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19 / 육영공원 터
* 명칭 육영공원 터 이명칭
개요 육영공원(育英公院) 터는 1886년(고종 23)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관립학교인 육영공원이 처음 설립됐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5 일대에 해당한다. 육영공원은 미국에 보빙사(報聘使)로 다녀온 민영익(閔泳翊) 등이 근대적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주장함에 따라 세워졌다. 그러나 개교 5년 만인 1891년에 박동의 독일영사관 자리로 이전했다가 1894년 폐교됐다.
설명 육영공원(育英公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으로, 전통적 교육에서 근대적 신교육으로 이행하는 교량적 역할을 했던 학교이다. 1882년(고종 23)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의 체결 이후 보빙사(報聘使)로 미국을 다녀온 민영익(閔泳翊), 홍영식(洪英植) 등이 근대적 교육기관의 설립을 건의했다. 이에 고종(高宗)이 미국공사 푸트(Lucius Harwood Foote)를 통해 영어교사 1인과 소학교사 3인을 요청했는데, 여기에서 육영공원의 설립이 시작됐다. 그러나 1884년(고종 25) 갑신정변(甲申政變) 등으로 국내정세가 불안하여 학교 설립이 지연됐다. 그러던 중 1886년(고종 27) 7월 미국에서 헐버트(H. B. Hulbert)·길모어(G. W. Gilmore)·벙커(D. A. Bunker) 등 3인의 교사가 도착하면서 같은 해 9월 23일 정식으로 개교했다. 육영공원은 ‘영재를 기르는 공립학교’라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정동에서 시작했으나, 5년 후인 1891년 박동의 독일영사관과 위치를 바꿔 이전했다. 육영공원의 설립목적은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학이므로 젊고 총명한 사람을 선발하여 학습하게 한다’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교과에서 영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그 외에 독서와 습자(習字), 산학(算學), 각국의 언어·역사·정치 등을 가르쳤다. 육영공원은 좌원반(左院班)과 우원반(右院班)으로 구성됐는데, 좌원은 현직관료 중 젊은 사람들을 선발했고, 우원은 양반 자제들 중에서 선발했다. 학생 정원은 35명이었으며, 교수들은 모두 미국인이었다. 미국인 교수 3인이 사임한 뒤에는 영국인 허치슨(W. F. Hutchison)과 핼리팩스(T. E. Hallifax)가 폐교될 때까지 교수직을 담당했다. 육영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로서, 초기 서양식 교육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영어에 편중되어 있는 교과과정과, 고위급 자제들을 대상으로 하여 서민 대중에게는 폐쇄적인 교육의 기회라는 측면에서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학생들의 태만과 정부의 재정난이 겹치면서 육영공원은 개교 8년 만인 1894년에 폐교되었다. 육영공원(育英公院) 터는 육영공원이 처음 설립됐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5 일대에 해당한다.
역사정보 1886 육영공원 설립(정동) 1891 박동으로 이전 1894 육영공원 폐교
시대분류 조선/1886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5(서소문동 37)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
시작일(발생일) 1886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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