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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17 / 시위병영 터
* 명칭 시위병영 터 이명칭
개요 시위병영(侍衛兵營) 터는 조선 말기 군부대신의 감독 아래 국왕과 궁내를 호위하던 시위대(侍衛隊)가 주둔하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100 일대에 해당한다. 시위대는 1895년(고종 32) 5월 25일 칙령 제120호의 반포에 따라 편성된 군대이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어 전국적인 의병봉기의 계기가 되었다.
설명 시위병영(侍衛兵營) 터는 시위대(侍衛隊)가 주둔하던 곳이다. 시위대는 1895년(고종 32) 5월에 조직된 군대로, 왕과 궁궐의 호위를 담당하던 부대이다. 그러나 창설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을미사변(乙未事變)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산되어 훈련대에 편입되었다.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경운궁(慶運宮)으로 환궁한 고종(高宗)이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중앙군을 러시아식으로 개편하면서, 1897년(고종 34) 9월 30일 시위대를 다시 조직했다. 시위대의 당시 조직은 1개 대대 5개 중대였으나, 그해 10월에 1개 대대를 추가로 편성했다. 이어 1898년(고종 35) 10월 2개 대대를 합쳐 연대로 개편했으며, 2개 연대에 포병대대를 편제하고 군악대까지 두었다. 1900년에는 시위독립기병대대를 창설해, 2개 연대와 독립기병대대로 조직하는 등 편제를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1905년 4월 일제에 의해 축소됐고, 1907년 8월 강제로 해산됐다. 시위대 해산식은 1907년 8월 훈련원(訓練院)에서 있었다. 당시 제1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은 해산식 강행에 분개하여 “군인이 능히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능히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후 대대장실에서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장병들이 무기고를 부수고 무장한 후 봉기했고 제2연대도 이에 호응했으나, 불과 2시간 만에 패배하고 말았다. 시위병영 터는 박승환이 대대장으로 있던 제1연대 제1대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이다. 시위대는 일제에 저항해서 싸운 유일한 중앙군이었으며, 시위대의 무장봉기는 이후 의병전쟁으로 발전해 항일운동의 한 축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002년에 설치된 시위병영 터 표지석이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 국민은행 앞에 있다.
역사정보 1895 시위대 창설, 3개월 만에 해산 1897 시위대 재조직 1907 시위대 강제 해산, 제1대대장 박승환 자결, 시위대 무장봉기
시대분류 조선/1895(창설), 조선/1897(재조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100(서소문동 58-9)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
시작일(발생일) 1895년(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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