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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05 / 서성 집터
* 명칭 서성 집터 이명칭 서약봉 터(徐藥峯 터)
개요 서성(徐偗, 1558~1631) 집터는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서성의 집이 있던 곳이다. 현재 위치는 서울역사 뒤편 만리동 고개에 있는 손기정체육공원과 봉래초등학교 인근이다.
설명 서성(徐偗, 1558~1631) 집터는 서성이 지은 집이 있던 곳이다. 서성의 본관(本官)은 대구(大邱), 자(字)는 현기(玄紀), 호(號)는 약봉(藥峯)으로 1586년(선조 19) 문과에 급제했다. 예조좌랑(禮曹佐郞),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선조(宣祖)를 호종(扈從, 임금의 가마를 모시는 일)했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도 인조(仁祖)를 강화(江華)까지 호종했고, 숭록대부(崇祿大夫)로 승격했다. 학문을 즐겨 이인기(李麟奇)·이호민(李好閔)·이귀(李貴) 등과 남지기로회(南池耆老會)를 조직해 역학(易學)을 토론했고, 서화(書畫)에도 뛰어났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대구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약봉집(藥峯集)》이 있으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청풍군수(淸風郡守) 이고(李股)의 딸인 서성의 어머니 이씨는 눈이 멀었다고 전해진다. 젊었을 때 과부가 되어 아들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평소 음식솜씨가 뛰어났던 이씨는 주막집에서 밥을 짓고 술을 걸러내 아들을 양육(養育)했다. 이곳에 집을 지을 때, 앞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 이씨의 감역(監役, 공사가 잘못됨이 없도록 단속함)이 매우 치밀했다고 한다. 목수가 일부러 대청 기둥을 거꾸로 세워 그녀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했는데, 이씨가 손으로 점검하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여 바로 고쳐 세웠던 일도 있다고 전해진다. 서성 집터의 현재 위치는 서울역사 뒤편 만리동 고개에 있는 손기정체육공원과 봉래초등학교 인근이다.
역사정보 1558 서성 출생 1600년 전후(추정) 서성 가택 건축 1631 서성 사망
시대분류 조선/1600년 전후(추정)
주제분류 문화/인물/생가(터)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손기정로 101(만리동2가 6-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2가
시작일(발생일) 1600년 전후(추정)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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