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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300 / 숭례문
* 명칭 숭례문 이명칭 남대문
개요 숭례문(崇禮門)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에 소재한 조선 전기의 성문으로, 서울 도성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라서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한다. 숭례문은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의 주된 관문이었다. 숭례문에서 임금이 사신과 신하를 맞이하고 전송(餞送)하기도 했으며, 임금의 거동 때는 숭례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돌아왔다.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설명 숭례문(崇禮門)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1395년(태조 4)에 착공해 1398년(태조 7) 완성한 성문으로, 조선의 수도 한양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라 하여 흔히 남대문(南大門)으로 불린다. 조선에서 가장 큰 문인 숭례문은 1447년(세종 29) 새로 짓다시피 개축된 후, 1479년(성종 10)의 대규모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 우리가 아는 모습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숭례문은 수도 한양의 관문으로서 중심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숭례문에서 임금이 사신과 신하를 맞이하거나 전송(餞送)했으며, 임금이 행차할 때는 숭례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돌아왔다. 또 기청제나 기우제와 같이 하늘에 지내는 제사도 숭례문에서 행했으며, 인정(人定)이나 파루(罷漏)와 같이 통행금지제도가 적용되는 성의 안팎을 구별하는 경계의 의미를 갖기도 했다. 숭례문은 중앙부에 홍예문(虹蜺門)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 위에 서 있다. 석축 윗면에는 주위에 높이 1.17m의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려 동서 양쪽에 협문(夾門)을 열었고, 건물의 바깥쪽 바닥에는 판석(板石)을 깔았다.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홍예 윗면인 중앙간(中央間)만을 우물마루로 하고 나머지는 흙바닥이다. 지붕은 위와 아래층 모두 겹처마로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 추녀 끝에 끼우도록 만든 기와)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머리[龍頭], 그리고 용마루 양끝에는 독수리머리를 올렸다. 한편 숭례문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성문이기 때문에 천장을 가설할 필요가 없어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성문 건축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됐다. 이후 숭례문은 2008년 2월 10일 화재가 발생하여 2층 문루가 소실되고 1층 문루 일부가 불에 탔다. 수습과 복구를 위한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나서 2010년 2월 착공식을 거행하고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복구과정에서 기존의 것에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리고, 그 위에 불탄 부분을 재현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변형된 부분들을 다시 되돌리는 데 주력했다. 약 3년간의 복구공사를 거친 뒤 숭례문은 2013년 5월 4일 복구기념식을 거행하고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역사정보 1395 숭례문 착공 1398 숭례문 완공 1447 숭례문 개축 1479 대규모의 보수공사 진행 1962 국보 제1호 지정 2008 화재 발생 2010 복구 작업 착수 2013 복구 기념식 거행 및 대중에 공개
시대분류 조선/1398
주제분류 문화/축조물/문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40(남대문로4가 29)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
시작일(발생일) 13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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