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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22 / 국사당 터
* 명칭 국사당 터 이명칭
개요 국사당(國祠堂) 터는 조선시대 남산 정상에 세워졌던 국사당이 있던 자리로, 현재의 남산 팔각정 부근으로 추정된다. 국사당은 조선시대에 국가 제의를 행하고,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사당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설하고 남산을 일본 신토[神道] 신앙의 본거지로 조성함에 따라 국사당은 인왕산의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인왕산 국사당은 1973년 중요민속자료 제28호로 지정되었고, 남산의 국사당 터에는 남산 팔각정이 조성되어 남산을 대표하는 시민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설명 국사당(國祠堂) 터는 조선시대 남산 정상에 세워졌던 국사당(國祠堂)이 있던 자리이다. 국사당은 목멱신사(木覓神祠) 또는 남산사(南山祠)라고도 불리었는데, 조선시대에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木覓大王)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서 산천제의 국가 제의를 행하는 사당이었다. 그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남산 서북쪽 자락에 조선신궁이 세워지면서 조선총독부는 국사당이 조선신궁보다 높은 자리에 위치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국사당을 인왕산 무학재로 옮기게 하였다. 이에 따라 1925년 현재의 인왕산국사당(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이 있던 자리에 국사당이 새로 조성되었다. 또 조선총독부는 국사당의 이름에서 ‘사(祠)’를 ‘사(師)’로 바꾸게 하여 국사당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켰다. 국사당은 본래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와 천신, 산신, 수신 등을 제사지내는 곳이었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의하면 나라에 대사가 있으면 반드시 산천에 제를 올렸다고 하였는데 국사당은 그러한 제를 지내던 사당이었다. 국사당에서 지낸 제의는 주로 나라를 지키고 복을 비는 수호기복, 왕가나 왕손의 병을 구원하는 구병(救病) 등이 대부분이었다. 고대로부터 지속되어 온 산악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고, 그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신당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 국사당이다. 국사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었는데, 인왕산으로 옮긴 뒤에 정면 양쪽에 한 칸씩을 더해 5칸이 되었다. 중요민속자료 제17호인 무신도(巫神圖) 28점이 신앙대상물로 내부에 붙어 있다. 인왕산 국사당은 1973년 7월 16일 중요민속자료 제28호로 지정되었다. 국사당은 조선시대에는 수도 한양을 대표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광복 이후 국사당 터에 남산 팔각정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팔각정은 1959년 서울시에서 건립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정(雩南亭)’으로 명명하였고 ‘팔도강산’의 상징으로 8각 형태로 지었다. 4·19혁명으로 우남정은 철거되었고, 1968년 ‘팔각정’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립 되었다. 현재는 남산을 대표하는 시민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역사정보 건립연대 미상 1925 인왕산으로 이전 1959 국사당 자리에 우남정(현 남산 팔각정) 건립 1960 4·19혁명으로 우남정 철거 1968 재건립(팔각정) 1973 인왕산국사당, 중요민속자료 제28호 지정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종교유적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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