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80 / 상진 집터
* 명칭 상진 집터 이명칭
개요 상진(尙震, 1493~1564) 집터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신망이 두루 두터워 삼정승을 지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인물인 상진의 집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26-2 일대에 해당한다.
설명 상진(尙震, 1493~156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예조좌랑, 대사간, 동부승지(同副承旨),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병조판서, 우찬성, 돈령부지사, 중추부지사 등을 지내고, 신망이 두터워 삼정승 등을 역임한 뒤 기로소(耆老所,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文臣) 출신자들의 예우 차원에서 설치한 관서)에 들어간 인물이다. 상진의 본관은 목천(木川)이며,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향일당(嚮日堂)으로 1493년(성종 24) 부여에서 태어났다. 상진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매부인 하산군(夏山君) 성몽정(成夢井)의 집에서 자랐다. 1516년(중종 11)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이어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해 사관(史官)이 되었다. 1526년(중종 21) 예조좌랑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중종 23) 필선(弼善)이 된 뒤 집의(執義)·응교(應敎) 등을 거쳐 1533년(중종 28) 대사간(大司諫)에 올랐다. 이어 동부승지(同副承旨)와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병조판서(兵曹判書) 등을 지냈다. 병조판서일 때는 군정 확립, 특히 마정(馬政)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실시에 노력하였다. 이후에는 우찬성(右贊成)·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가 되었으며, 1544년 중종(中宗)이 승하하자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후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 등을 지내고 우의정(右議政)과 좌의정(左議政)을 거쳐 1558년 영의정(領議政)이 되었다. 1563년(명종 18) 나이가 들어 물러나기를 청했으나 불허되고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가 된 이후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궤장(几杖, 왕조에 공이 있는 연로한 고위 문신에게 내려주던 방석과 지팡이)을 하사받았다. 상진은 15년 동안 재상으로서 왕을 보좌하였으며, 청렴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주위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상진 집터는 상진의 집이 있던 곳으로, 현재 중구 남대문로 26-2 남대문로 지하쇼핑센터 8번 출구 앞에 상진 집터 표지석이 있다.
역사정보 1493 상진 출생 1564 상진 사망
시대분류 조선/1493
주제분류 문화/인물/생가(터)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26-2(남창동 2-4)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
시작일(발생일) 1493년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