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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79 / 창동천 수각교 터
* 명칭 창동천 수각교 터 이명칭 수각다리
개요 창동천(倉洞川) 수각교(水閣橋) 터는 창동천 위에 놓였던 수각교라는 다리가 있던 자리이다. 창동천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 서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시청 앞을 지나 무교와 소광교를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개천으로,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의 창고가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각교는 수각다리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복개되어 없어졌다.
설명 창동천(倉洞川)은 남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선혜청(宣惠廳)을 지나 청계천 본류로 흘러들어 가는 하천으로, 창동수(倉洞水) 또는 창동천수(倉洞川水)라고도 하였다. 남산 서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시청 앞을 지나 무교(武橋)와 소광교(小廣橋)를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개천으로, 조선시대 선혜청의 창고가 있던 데서 창동천이란 이름이 유래하였다. 수각교(水閣橋)는 남대문을 들어와 건너는 첫 번째 다리로서 조선시대 이곳에 수각(水閣)이 있었으므로 수각다리, 또는 수교(水橋)라고 하였다. 창동천 수각교 터는 수각교가 있던 곳으로, 지금의 중구 남대문로4가 숭례문 건너편에 있었다. 수각교의 너비는 약 37척(10.8m)이었다고 하며, 지금은 복개되어 없어졌다. 창동천(倉洞川)은 남산의 서쪽 남창동(南倉洞)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흘러 남대문로4가 지역의 수각교를 지나 서울시청 앞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무교와 소광교를 거쳐 청계천과 합류하는 물줄기이다. 이 물줄기는 숭례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물줄기이며, 이때 제일 먼저 건너는 다리가 수각교였다. 조선시대 청계천의 지류인 창동천에 놓여 있던 다리는 13개 정도였다. 그 가운데 현재 이름이 확인되는 경우는 수각교를 비롯해 미장동교(美墻洞橋), 수각교(水閣橋), 전도감교(錢都監橋), 소광교(小廣橋), 군기시교(軍器寺橋) 등이다. 창동천 일대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서울의 장안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조선시대에 상진(尙震), 이항복(李恒福) 등 양반권세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수각교의 다른 이름인 수교에서 중구 남대문로3가와 남대문로4가에 있던 마을인 수교동(水橋洞)이 유래되기도 하였다.
역사정보 조선시대 초기 수각교 설치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 24-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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