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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02 /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 명칭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이명칭 삼청동 김홍기 가옥
개요 조선 고종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김춘영(金春榮)이 1890년대에 종로구 삼청동에 지은 집으로 1996년 남산골 한옥마을에 이전 복원되었다. 아담한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서울 전통주거의 일반적인 모습과 품격을 보여주는 가옥이다.
설명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三淸洞 五衛將 金春榮 家屋)은 조선 고종 때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에 지은 집이다. 원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김춘영의 손자인 김홍기(金洪基)가 살 때까지 주거용으로 사용하였다. 1977년 ‘서울시 민속문화재 8호’로 지정될 당시의 명칭은 ‘삼청동 김홍기 가옥’이었다. 오위장은 조선 전기 중앙 군사조직인 ‘오위(五衛)’를 거느리는 종2품 무관직 벼슬이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군제가 개편되면서 오위는 소속 군사력이 전혀 없는 기구로 바뀌었고, 오위장은 정3품으로 격하되었다. 조선 말기 오위장은 중앙 군영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궁궐을 호위하였다. 가옥은 167.9㎡의 아담한 대지에 서쪽에 길을 두고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一자형 대문채, ㄷ자형 안채, ㄱ자형 사랑채가 연결된 구성이다. 서울의 옛집이 대부분 ㅁ자인 데 비해 이 가옥은 ㄹ자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대문채에는 2개의 대문과 문간방이 있다. 서남향한 대문간으로는 안채로, 서향한 일각대문으로는 사랑채로 들어서게 된다. 안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문간 맞은편의 내외벽을 돌아 안마당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대문간에서 바로 안채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 왼쪽에 안방·부엌·마루·광을 두었다. 이는 조선시대 서울 서민주택의 일반적인 형태인데, 이 가옥은 서민 가운데서도 경제적으로 윤택한 중상류층 집안 가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집터가 비교적 좁은 관계로 부엌 남쪽의 마루와 광이 대문채의 문간방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안채의 구조는 긴 섬돌 초벌대 기단(基壇) 위에 네모뿔대의 초석을 놓고 흘림이 없는 네모기둥을 세운 납도리집으로서, 오량가(五樑架, 도리가 5개 있는 지붕구조),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뒷벽체의 방화장(放火牆, 화재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벽체의 일부나 전체를 돌이나 벽돌로 쌓은 것)은 사괴석(四塊石, 육면체의 돌)을 놓고 벽돌을 쌓아 만들어 격조 높은 품위를 가진다. 또한 추녀의 끝부분에 태극문양을 조각하여 장식한 점도 특이하다. 사랑채는 대문간과 연이어 튀어나온 형태로 되어 있다. 사랑방, 대청, 건넌방, 작은 마당을 두었다. 1977년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고, 1996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 복원되었다.
역사정보 1890년대 건축 1977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 1996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 1998 개장
시대분류 조선/1890년대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고가옥, 관아건축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필동2가 84-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시작일(발생일) 18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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