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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58 / 구 약초좌(스카라극장 터)
* 명칭 구 약초좌 이명칭 약초동보극장
개요 약초좌(若草座)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 자본에 의해 설립된 극장으로,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29에 위치하고 있었다. 광복 후 한국인이 극장을 인수하여 수도극장(首都劇場)으로 변경하였으며, 1955년에 다시 외화 전문상영관인 스카라극장으로 재개관하였다. 2005년 문화재청이 건물에 대해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예고하자 소유주가 기습적으로 철거하여 사라졌다. 그 후 이곳에는 아시아타워미디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설명 약초좌(若草座)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29에 설립된 극장이다. 일본 자본에 의해 건립된 이 극장은, 대지면적 990㎡에 지상 4층 규모의 건물로 2개 층의 관람석을 갖추고 있었다. 극장의 이름이 약초좌인 이유는 지금의 초동(草洞)인 약초정(若草町)에 극장이 소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극장은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였던 동보영화사(東寶映畫社)의 이름을 따서 약초동보극장(若草東寶劇場)이라고도 하였고, 간단히 약초극장(若草劇場)이라고도 하였다. 설계는 카와자와[川澤]건축사무소가 담당하였는데, 현관과 로비를 반원형으로 돌출시켜 극장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약초좌는 당시 영화상영과 공연을 병행하였는데, 1944년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李蘭影)의 남편 김해송(金海松)이 약초좌 산하의 ‘약초가극단’을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 1946년 약초좌는 지배인으로 있던 홍찬(洪燦)이 극장을 인수하여 1,172석의 대규모 객석을 보유한 수도극장(首都劇場)으로 재개관하였다. 1954년 수도극장에서 한형모(韓瀅模) 감독의 영화 〈운명의 손〉이 상영되었는데, 이 작품은 국내 최초의 키스신으로 화제가 되었다. 수도극장은 이듬해인 1955년 방화관(邦畵館)에서 외화관(外畵館)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1962년 4월 수익악화로 극장의 주인이 바뀌면서 그해 9월 13일 수도극장의 이름도 스카라극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스카라라는 극장의 이름은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소유주와 극장 이름이 바뀐 이후에도 이 극장은 한국 영화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79년 하길종(河吉鍾) 감독의 영화 〈병태와 영자〉가 이곳에서 상영되었는데, 감독이 자신의 작품이 상영되는 극장을 찾았다가 뇌졸중으로 요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추세가 점차 단관 상영극장에서 대기업 산하 멀티플렉스체인으로 옮겨감에 따라 스카라극장은 쇠퇴 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문화재청이 스카라극장 건물을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예고하자, 이에 반발한 건물주가 그해 12월 극장 건물을 기습적으로 철거하는 바람에 갑자기 사라졌다. 그 후, 스카라극장이 있던 곳에 지하 5층 지상 11층 규모의 아시아미디어타워가 건립되었다. 아시아미디어타워는 2008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2009년에 완공되었으며, 현재 아시아미디어그룹이 입주하여 오늘에 이른다.
역사정보 1935 약초좌 개관 1944 김해송, 약초좌 산하에 약초가극단 조직 1946 수도극장으로 개칭 1954 한형모 감독 〈운명의 손〉 상영 1955 수도극장, 외화관으로 전환 1962 스카라극장으로 개칭 1979 〈병태와 영자〉의 감독 하길종, 이곳에서 사망 2005 스카라극장 철거 2009 아시아미디어타워 완공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35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29(초동 42)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초동
시작일(발생일) 1935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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