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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55 / 묵사동천 염초교 터
* 명칭 묵사동천 염초교 터 이명칭
개요 묵사동천(墨寺洞川) 염초교(焰硝橋) 터는 남산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묵사동천에 있던 염초교라는 다리가 있던 자리이다. 염초교는 1910년대 일제의 청계천 확장공사 때 철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후 이곳에는 방산종합시장이 조성되어 오늘에 이른다.
설명 묵사동천(墨寺洞川)은 중구 필동3가 남산 기슭에서 발원해 충무로와 을지로를 지나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하천이다. 개울 근처에 묵사(墨寺), 혹은 먹절이라 부르던 절이 있어 이 부근을 묵사동, 혹은 먹절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개천의 이름은 이처럼 옛 지명에서 온 것이다. 개울 상류는 풍경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많은 문사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묵사동천의 발원지는 조선 후기 한성을 방위하던 금위영(禁衛營)의 분영인 남별영(南別營)이 있던 곳이다. 또 이곳에는 순조 때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이 세운 노인정(老人亭)이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갑오개혁 직전인 1894년 4월 내무독판(內務督辦) 신정희(申正熙, 1833~1895) 등이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를 만나 그가 제안한 개혁안을 의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조선 후기 북학파의 거두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쓴 《허생전(許生傳)》에도 이 고을이 언급되어 있다. 작중 주인공인 허생이 은둔해서 살던 오막살이가 있던 곳이 바로 먹절골, 즉 묵사동이었다. 또한 이곳에 염초교(焰硝橋)가 있었는데, 묵사동천이 청계천과 합류하기 바로 전에 놓여 있던 다리였다. 다리의 이름은 조선시대 이곳에 화약을 제조하던 염초청(焰硝廳)이 있던 데서 유래하였다. 염초청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 본청이 설치된 바 있다. 이후 1868년에는 염초청을 조선 후기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분영(分營)인 하도감(下都監)으로 이전하였다. 1882년의 임오군란(壬午軍亂) 후 하도감과 염초청은 모두 폐지되었다. 염초교는 1910년 국권피탈 후 청계천 확장공사 때 철거된 것으로 추정되며, 광복 후 이곳에는 방산종합시장이 조성되어 오늘에 이른다.
역사정보 1592~1598 염초청 본청 설치 1682 묵사동천 발원지에 금위영 중 남별영 설치 1894 묵사동천 노인정에서 내무독판 신정희 등이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의 개혁안을 의결 1882 임오군란으로 염초청 폐지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청계천 확장공사 때 철거된 것으로 추정 1945 광복 후 방산시장 조성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주교동 2–2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주교동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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