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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46 / 동평관 터
* 명칭 동평관 터 이명칭
개요 동평관(東平館) 터는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이 머물던 숙소인 동평관이 있던 곳이다. 동평관은 조선 전기 일본과의 외교와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으로 왜관(倭館)이라고도 한다. 1407년(태종 7)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국교가 단절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동평관 터에는 현재 인현어린이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공원 안에 동평관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설명 동평관(東平館)은 조선 전기 한성을 방문한 일본 사신이 머물던 숙소로, 왜관(倭館)이라고도 불리었다. 1407년(태종 7) 처음 설치된 것으로 추측되며, 일본에 대한 회유 정책에 따라 수많은 왜인들이 왕래하였기 때문에 동평관 외에도 서평관(西平館)을 따로 두었다. 1434년(세종 16) 일본 사신의 왕래를 억제하면서 서평관을 폐지하고 동평관만 남겨두었다. 조선 정부는 동평관을 관리하기 위해 감호관(監護官)을 두었으며, 동평관에는 관사와 창고를 설치해 그릇과 미곡을 저장하고 일본의 사신과 객인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정부는 동평관에 군졸을 두어 해가 뜨면 문을 열고, 어두워지면 문을 닫게 하여 출입을 엄하게 단속하였다. 공식적으로 허락된 공청무역(公廳貿易) 외에는 관문 밖에서의 무역을 금지하였으며 위반자는 엄격하게 죄를 물어 다스렸다. 그럼에도 밤에 몰래 담을 넘어가 민간과 밀무역을 하는 경우가 잦았으므로 의금부(義禁府)에서는 이들의 단속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동평관은 불에 타 소실되었고, 이후 일본과의 공식적인 외교가 단절되면서 동평관도 폐지되었다. 동평관 터에는 1906년부터 1934년까지 인현공립보통학교(仁峴公立普通學校)가 있었다. 이 학교는 중구 필동에서 1895년에 관립소학교로 개교하여 1906년 이곳으로 옮겨와 인현공립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이어 1930년 소학교령에 의해 인현공립보통학교는 경성광희심상소학교(京城光熙尋常小學校)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1934년에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의 교사로 이전하였다. 인현공립보통학교가 있던 동평관 터에는 지금 인현어린이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공원 안에 동평관이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역사정보 1407 동평관, 서평관 설치 1434 서평관 폐지 1592 동평관 소실, 이후 폐지 1906 동평관 터에 인현공립보통학교가 이전해 옴 1930 경성광희심상소학교로 교명 변경 1934 경성광희심상소학교, 중구 신당동 교사로 이전 현재 동평관 터에 인현어린이공원이 조성되어 있음
시대분류 조선/1407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2가 142-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2가
시작일(발생일) 1407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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