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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38 / 오간수문지
* 명칭 오간수문지 이명칭
개요 오간수문지(五間水門址)는 조선시대 오간수문(五間水門)이 놓였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18-214 일대에 해당한다. 오간수문은 청계천의 물줄기가 원활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성의 성곽을 지나는 자리에 축조되었던 수문이다. 1907년 일제는 오간수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오간수교(五間水橋)를 건립하였는데, 1950년대 말의 청계천 복개공사 때 오간수교 역시 철거되었다.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 때 오간수교만 복원되었고, 발굴된 오간수문 유구(遺構)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중랑하수종말처리장 공터로 이전되었다.
설명 오간수문(五間水門)은 청계천의 물줄기가 도성의 성곽을 지나는 자리에 축조되었던 수문이다. 오간수문은 도성 성곽이 처음 축조된 1396년(태조 5)에 함께 건설되었는데, 그 이유는 흥인지문(興仁之門)과 광희문(光熙門) 사이의 지역이 도성에서 가장 낮은 지대로, 흘러드는 도성 안의 물을 바깥으로 보낼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간수문지(五間水門址)는 이 오간수문이 놓였던 장소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18-214 일대에 해당한다. 오간수문은 말 그대로 5개의 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5개의 수문으로 축조된 것은 아니었다. 1421년(세종 3)에 한 번 증축되었으며, 1481년(성종 12) 당시에는 3개의 수문만 건설되었다가 나중에 수문이 5개로 증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 후기 들어 오간수문에 토사가 쌓여 수문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자, 1760년(영조 36) 청계천의 강바닥 흙을 퍼내는 경진준천(庚辰濬川)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간수문 또한 보수하여 수문의 역할을 하도록 정비하였고, 개천 양쪽 기슭에 버드나무를 심어 토사가 쌓이는 것을 방지하였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7년 일제는 청계천의 배수를 원활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오간수문을 철거하였고, 이듬해 주위의 도성 성벽까지 헐어 청계천의 폭을 넓힌 다음 그 자리에 오간수교(五間水橋)를 세웠다. 오간수교는 1958년에 시작된 청계천 복개공사 과정에서 완전히 철거되었다. 그러다 2003년 청계천 복원공사 때 오간수교 자리에서 과거 오간수문의 기초석 등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장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물건)가 발견되었다. 이 유구는 2005년 오간수문지, 광통교지(廣通橋址), 수표교지(水標橋址) 등의 다른 청계천 발굴유적과 함께 사적 제461호로 지정되었다. 오간수교 복원 이후 발굴된 유구는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있는 중랑하수종말처리장 공터로 이전하였으며, 현재도 그곳에 위치해 있다.
역사정보 1396 한양도성 축조 시 수문 건설 1421 수문을 증축 1481 3개의 수문이 존재하였고, 이후 5개의 오간수문으로 증축 1760 청계천을 정비하는 경진준천 때 오간수문 정비 1907 오간수문 철거 1908 오간수문 근처 도성 성벽 철거, 오간수교 축조 1921 동대문-광희문 전차노선 신설로 오간수교에 전차 운행 1926 순종황제 인산으로 오간수교 확장 1958~1961 청계천 복개공사로 오간수교 철거 2003 청계천 복원공사 때 오간수문 유구 발굴 2005 청계천 복원공사로 오간수교 복원, 오간수문 유구를 사적 제461호로 지정하고 중랑하수종말처리장으로 유구 이전
시대분류 조선/1400년대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18-214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시작일(발생일) 1400년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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