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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34 / 훈련원 터
* 명칭 훈련원 터 이명칭
개요 훈련원(訓鍊院) 터는 조선시대에 병사의 무재(武才) 시험과 무술훈련, 병서(兵書)의 강습 등을 맡아보던 훈련원이 있던 자리이다. 설치 당시인 1392년(태조 1)에는 훈련관(訓練觀)으로 불리었다. 태종 때에 지금의 장소인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로 옮겨오고, 1466년(세조 12)에 훈련원으로 개칭했다. 현재 훈련원 터 일대는 훈련원공원(訓鍊院公園)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설명 훈련원(訓鍊院) 터는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어 병사의 무예수련 및 병서(兵書), 전투대형 등의 강습을 담당한 훈련원이 있던 곳이다. 훈련원은 처음에 훈련관(訓練觀)으로 불리었다. 훈련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466년(세조 12)이다. 태종 때 지금의 장소로 옮겨와 청사 남쪽에 활쏘기와 창이나 칼쓰기 등의 무예를 연습하고, 무과시험을 위한 대청인 사청(射廳)을 지었다. 문신들이 국정운영을 좌우했던 고려시대에는 무관에 대한 홀대로 무과시험이 존재하지 않다가 1390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치러졌다. 1392년 조선의 건국과 함께 군사훈련을 체계화하고 무과시험을 담당할 기관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훈련원은 이 같은 필요에서 설치된 관청으로 태종 때에 병조(兵曹)의 예하기구로 편제되었다.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모든 무관들은 이곳에서 무과시험을 치렀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 군제의 변화가 필요해짐에 따라 훈련원은 1795년(정조 19년)에 관원의 수를 증원하였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생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3,000명의 회군(淮軍,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의용부대)을 거느리고 청(淸)의 제독 오장경(吳長慶)이 상륙하였다. 이에 그의 공적을 기리는 오장무공사(吳壯武公祠)가 훈련원 내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오장경은 후일 조선에 정착한 화교의 비조(鼻祖)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후 대한제국 말기 국권피탈의 과정에서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됨에 따라, 1907년 훈련원도 해산되었다. 현재 훈련원 터 일대는 훈련원공원(訓鍊院公園)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공원이 조성되기 전 이곳에는 백두산 육송으로 지은 적벽돌 외관의 목조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역사정보 1390 고려 말기 과거 중 무과 제정 1392 훈련관 설치 1405 훈련관을 병조 예하기구로 편제 1466 훈련원으로 개칭 1795 훈련원 관원 증원 1884 청(淸)의 제독 오장경을 기리기 위한 오장무공사 건립 1907 한일신협약으로 훈련원 폐지 1997 훈련원공원 조성
시대분류 조선/1466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45(을지로6가 18-79)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시작일(발생일) 1466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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