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30 / 묵사동천 청녕교 터
* 명칭 묵사동천 청녕교 터 이명칭
개요 묵사동천(墨寺洞川)은 남산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개천으로 여러 이칭(異稱)이 존재하였다. 묵사동천 위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놓였는데, 청녕교(淸寧橋)는 그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이 개천은 노인정 터 위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복개되었으며, 청녕교가 있던 곳에는 을지로 포장도로가 깔려 있다.
설명 묵사동천(墨寺洞川)은 중구 필동3가 남산 기슭에서 발원해 충무로와 을지로를 지나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하천이다. 개울 근처에 묵사(墨寺), 혹은 먹절이라 부르던 절이 있어 이 부근을 묵사동, 혹은 먹절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개천의 이름은 이처럼 옛 지명에서 온 것이다. 개울 상류는 풍경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많은 문사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묵사동천의 발원지는 조선 후기 한성을 방위하던 금위영(禁衛營)의 분영인 남별영(南別營)이 있던 곳이다. 또 이곳에는 순조 때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이 세운 노인정(老人亭)이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갑오개혁 직전인 1894년 4월 내무독판(內務督辦) 신정희(申正熙, 1833~1895) 등이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를 만나 그가 제안한 개혁안을 의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조선 후기 북학파의 거두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쓴 《허생전(許生傳)》에도 이 고을이 언급되어 있다. 작중 주인공인 허생이 은둔해서 살던 오막살이가 있던 곳이 바로 먹절골, 즉 묵사동이었다. 묵사동천에는 모두 4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청녕교(淸寧橋)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곳에 살았던 성종의 셋째 사위 한경심(韓景深)의 직책이 청녕위(淸寧尉, 공주의 남편인 부마에게 내리는 작호)였기 때문에 이곳을 청녕교, 청녕위다리, 혹은 줄여서 청교(淸橋)라고도 하였다 한다. 현재 이 개천은 노인정 터 위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복개되었으며, 청녕교가 있던 곳에는 을지로 포장도로가 깔려 있다.
역사정보 1682 묵사동천 발원지에 금위영 중 남별영 설치 1894 묵사동천 노인정에서 내무독판 신정희 등이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의 개혁안을 의결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18(을지로5가 6-5)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5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