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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29 / 쌍이문동천 어청교 터
* 명칭 쌍이문동천 어청교 터 이명칭
개요 쌍이문동천(雙里門洞川)은 남산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개천으로, 어청교(於淸橋)는 이 개천에 있던 다리이다. 현재 쌍이문동천은 모두 복개되어 개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설명 쌍이문동천(雙里門洞川)은 남산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중구 쌍림동, 광희동, 오장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개천이다. 조선 전기에는 이곳에 마을의 방범을 위해 설치한 이문(里門)이 2개 있었는데, 쌍이문동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쌍이문동은 쌍리동천, 쌍이문골천, 쌍이문골내, 쌍이뭇골내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 때 권신으로 활약한 이이첨(李爾瞻, 1560~1623)이 이곳에 살았는데, 그는 이곳의 지명을 따 본인의 호를 쌍리(雙里)라 칭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문은 1465년(세조 11)에 한성부(漢城府) 전 지역에 100여 개가 설치되었고, 병조(兵曹)가 관할하였다. 이문에는 매일 밤 10호당 2명씩, 20호 이하는 3명씩, 30호 이하는 4명씩, 그 이상은 5~6명씩 민간의 주민이 나와서 숙직을 서도록 하였다. 성종 때는 방범뿐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잔치나 고성방가 등도 이문을 통해 단속하였다. 이러한 이문들은 임진왜란으로 모두 소실되어 복구되지 못하였다. 어청교(於淸橋)는 쌍이문동천에 있던 다리이다. 다리의 이름은 이곳의 지형이 구순구개열(口脣口蓋裂) 환자, 즉 언청이와 닮은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며, 언청다리, 어교(漁橋)라고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집필된 《경성부사(京城府史)》에는 무당이 많이 살아 이 다리를 수당교(水唐橋)라고 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현재 쌍이문동천은 모두 복개되어 개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역사정보 1465 한성부 전 지역에 이문 설치 1592 임진왜란으로 이문 소실 1934 《경성부사》 집필, 본문에서 어청교를 수당교로 서술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5가 148-3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5가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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