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역사문화자원Database Contents

역사문화자원

  • home >
  • 역사문화자원
  • 수정

 

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17 / 한양공원비
* 명칭 한양공원비 이명칭
개요 한양공원비(漢陽公園碑)는 1910년 서울 남산에 한양공원(漢陽公園)이 조성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비석이다. 한양공원은 1900년대 초반 한국에 일본인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그들을 위한 위락시설의 하나로 조성되었다. 비석은 남산3호터널 위 남산순환도로변에 소재하고 있으며,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한양공원’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설명 한양공원비(漢陽公園碑)는 대한제국기에 서울 남산에 조성된 한양공원을 기념하기 위해 1910년 공원 입구에 세운 표지석(標識石)이다. 1900년대 초반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여가와 유흥을 위해 조성된 한양공원은 이후 조선신궁(朝鮮神宮)이 한양공원 자리에 세워지면서 폐쇄되었다. 비석의 ‘한양공원’ 글씨는 고종의 친필로 전해지며, 광복 후 오랜 시간 사라졌다가 2002년에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개항 이후 서울로 이주해오는 일본인들이 급격히 증가하자 일본거류민단은 일본인을 위한 위락시설 조성을 필요로 하였다. 이에 1897년 남산 북쪽의 현 숭의여자대학교 자리에 왜성대공원(倭城大公園)을 조성하였고, 1910년에는 남산 서북쪽 산비탈 일대에 한양공원을 조성하였다. 한양공원 조성을 위해 일본거류민단은 공원부지를 한성부(漢城府)로부터 무상으로 대여받았다. 해당 부지는 현재의 남산식물원 자리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넓은 면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양공원은 1908년부터 조성을 시작해 이후 각종 시설을 완비하여 1910년 5월 29일에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한양공원 개원일에 고종은 칙사를 보내 치하하고, 비석에 새겨진 글씨인 ‘한양공원’을 직접 써서 보냈다고 한다. 한양공원은 1918년 조선총독부가 그곳에 조선신궁 건설을 결정함에 따라 폐쇄되었다. 비석은 바닥에 화강암 대석(臺石 110×55.5×45cm)을 놓고 그 위에 비신(碑身 88.5×165×45cm)을 세웠다. 전면에 ‘한양공원’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한양공원 조성에 기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졌던 듯하나 현재에는 모두 쪼아 없어져 알아볼 수 없다. 비석 주변에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철선을 두르는 데 사용된 사각 돌기둥 3개가 남아 있다. 한양공원비는 광복 이후 한참 동안 그 존재를 알 수 없다가, 2002년 서울 중구 회현동 케이블카 승강장 인근의 공원 철조망 안쪽 6~7m 지점의 풀숲에서 발견되었다. 비석에는 고종의 친필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고, 또 공원 조성에 도움을 준 기부자의 명단 흔적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를 지닌다. 현재 비석은 남산도서관 건너편 남산3호터널 위 남산순환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역사정보 1908 한양공원 조성 시작 1910 한양공원 조성 완료 1918 조선신사 건설 계획 수립, 한양공원 폐쇄 1925 조선신궁 건설 완료 2002 한양공원비 발견, 현재의 위치에 세움
시대분류 대한제국/1910
주제분류 문화/축조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57(회현동1가 산1-16)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시작일(발생일) 1910년
인물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