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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16 / 훈국염초청 터
* 명칭 훈국염초청 터 이명칭
개요 훈국염초청(訓局焰硝廳)은 조선 후기 수도 한성의 방어 임무를 맡았던 훈련도감(訓鍊都監) 예하 하도감(下都監) 소속의 관아로서, 주로 화약 제조를 담당했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5년 서울 도심의 소개(疏開) 정책으로 말미암아 모든 건축물이 철거되었다가, 1971년 세운상가의 한 건물인 청계상가(淸溪商街)가 완공되어 오늘에 이른다.
설명 1392년 조선이 건국될 때 군사훈련을 체계화하기 위해 그해에 훈련관(訓鍊觀)이 설치되었다. 이후 이 훈련관은 1405년(태종 5) 지금의 국방부 격인 병조(兵曹) 예하의 기구로 일부 편제되었으며, 1466년(세조 12)에는 훈련원(訓鍊院)으로 개칭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기존의 군사체계가 유효하지 않게 되자, 전쟁 중이던 1593년(선조 26) 한성을 방어하기 위한 부대로서 훈련도감(訓鍊都監)을 임시기구로 설치하였고, 나중에 이 훈련도감은 상설기구로 바뀌어져 수도방어의 중심역할을 맡았다. 수도 한성을 방어하는 군사편제가 다시 바뀐 것은 인조에서 숙종 연간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수도 및 수도 외곽을 방어하는 오군영(五軍營)이 성립되었다. 1623년(인조 1)에 어영청(御營廳), 1624년(인조 2)에 총융청(摠戎廳), 1626년(인조 4)에 수어청(守禦廳), 1682년(숙종 8)에 금위영(禁衛營)이 설치되었는데,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은 수도를 직접 방어하는 군영이었고, 총융청·수어청은 수도 외곽의 방어를 담당하였다. 그중에서도 훈련도감은 오군영의 중심부대로 기능하여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다른 이름으로 훈국(訓局)이라고도 불렀다. 한편 조선 전기부터 화약제조를 맡아보던 관아로서 염초청(焰硝廳)이 있었다. 이것이 1868년(고종 5) 훈련도감 예하 하도감(下都監) 소속으로 이관됨으로써 훈국염초청(訓局焰硝廳)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 훈련도감은 1881년(고종 18)의 군제개혁 때 신식군대인 별기군이 조직됨에 따라 구식군대인 무위영(武衛營)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다 이듬해인 1882년 별기군과 구식군대 사이의 대우 차이로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청국 및 일본의 간섭으로 훈국염초청은 철폐되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5년 서울 도심의 소개(疏開) 정책으로 말미암아 모든 건축물이 철거되었다가, 1971년 세운상가의 한 건물인 청계상가(淸溪商街)가 완공되어 오늘에 이른다.
역사정보 1593 훈련도감 설치 1682 수도방어를 위한 오군영 완비 1868 염초청을 훈련도감 예하 하도감으로 이관 1881 군제개혁으로 훈련도감을 무위영으로 통합 1882 임오군란으로 무위영을 비롯, 구식군대 기구 폐지 및 훈국염초청 철폐 1945 일제의 소개 정책으로 훈국염초청 지역의 건축물 철거 1971 세운상가의 일부인 청계상가 신축
시대분류 조선/1868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60(산림동 207-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산림동
시작일(발생일) 1868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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