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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207 / 광통교
* 명칭 광통교 이명칭
개요 조선 초기 서울 청계천에 놓여진 광통교(廣通橋)는 도성 내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광통방에 위치하고 있어 광통교 혹은 광교(廣橋)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근대 이후 한때 다리 본체가 도로 밑으로 묻히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광통교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설명 광통교(廣通橋)는 조선 태조(太祖)가 한양에 도성을 건설하면서 나온 흙으로 청계천에 다리를 놓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 1410년(태종 10)의 홍수로 다리가 유실되자 현재 정동의 미국공사관과 영국공사관 일대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을 허물어 그곳에서 나온 병풍석을 다리벽 및 기둥으로 사용하여 보수했다. 이 과정에서 광통교는 길이 12m, 폭 15m의 돌다리가 되었다. 아울러 광통교는 일반 민간이 사용하는 다리로서는 이례적으로 석축 난간이 설치되었는데, 이것 또한 정릉에서 허물어 가져온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1762년(영조 38) 한강의 치수사업 때 광통교도 함께 기초 부분 개축과 난간 부분 보수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고종 36)에 종로에서 남대문까지의 구간 전차선로가 광통교 동쪽에 가설되었다. 광통교의 수난은 일제강점기에 일어났다. 1910년에 광통교 동쪽에 놓여 있던 전차선로를 복선화하면서 다리 위로 전차가 다니게 되어 철근콘크리트교로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광통교 본체는 도로 밑으로 묻히게 되었고, 1923년에는 광통교 양쪽 끝 기둥 중 북쪽 교대(橋臺)를 뚫어 콘크리트 하수관을 박는 등 일제에 의한 훼손이 진행되었다. 광복 이후인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광통교는 난간 석축만 창경궁·창덕궁 등으로 이전되고 다리 본체는 다시 그대로 묻히게 되었다. 다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2005년 청계천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광통교는 비로소 온전한 옛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 광통교는 길이보다 폭이 더 넓은 구조적 특성을 십분 활용, 많은 문화행사가 이 다리 위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역사정보 1410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 석축을 허물어 광통교 보수 1910 종로에서 남대문까지의 구간 전차선로 확장으로 철근콘크리트 교량이 광통교 위로 건축됨에 따라 다리가 도로 아래로 묻힘 1958 청계천 복개공사로 난간 석축을 창경궁·창덕궁 등으로 이전, 다리는 여전히 도로 아래 묻힘 2005 청계천 복원공사를 통해 온전한 옛 모습을 되찾음
시대분류 조선/1401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1가 9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1가
시작일(발생일) 14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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