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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185 / 창동천 무교 터
* 명칭 창동천 무교 터 이명칭 군기시교 터, 군기싯다리 터
개요 창동천(倉洞川) 무교(武橋) 터는 조선시대 창동천 위에 놓였던 무교라는 다리가 있던 곳이다. 창동천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 서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시청 앞을 지나 무교와 소광교를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개천으로,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의 창고가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무교는 군기시교(軍器寺橋)라고도 하였다.
설명 창동천(倉洞川)은 남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선혜청(宣惠廳)을 지나 청계천 본류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창동수(倉洞水) 또는 창동천수(倉洞川水)라고도 하였다. 남산 서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시청 앞을 지나 무교(武橋)와 소광교(小廣橋)를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개천으로, 조선시대 선혜청의 창고가 있던 데서 창동천이란 이름이 유래하였다. 무교는 창동천 위에 놓였던 다리로, 군기시교(軍器寺橋)라고도 하였다. 창동천 무교 터는 그 무교가 있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16 일대에 해당한다. 군기시(軍器寺)는 병기(兵器)와 기치(旗幟), 의장기재 등의 제조를 관장하던 관청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왔던 군기감(軍器監)이 1466년(세조 12)에 개편된 것이 군기시였다. 군기시 앞에는 청계천을 이어주는 군기시교 혹은 군기싯다리라 불리는 다리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무교이다. 무교는 군기시가 철거된 후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총독부가 19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 청계천 복개공사 때 사라진 것으로 추측된다. 무교동이라는 지명은 무교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무교는 조선시대에 사형이 집행되는 장소였다. 조선시대 사형은 대부분 공개적으로 집행되었는데, 교형이나 참형이 주로 도성 밖의 당고개(唐古介)에서 행해진 반면 능지처참형은 도성 안의 군기시나 저잣거리, 무교 등에서 행해졌다. 때문에 사람들이 무교를 꺼려했다고 한다. 현재 중구 무교로 16 건물 앞 보도에 무교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역사정보 상세연도미상 무교 준설 일제강점기 청계천 복개공사 당시 철거(추정)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16(무교동 19)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동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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