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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012 / 안중근의사기념관
* 명칭 안중근의사기념관 이명칭
개요 안중근의사기념관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독립운동가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다. 이 자리는 조선시대 국사당이 지어졌다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이 있었던 자리이다.
설명 안중근의사기념관은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 안중근의사를 추모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구 기념관은 1970년에 만들어졌고, 그것을 헐고 새 기념관을 지은 것이 2010년이다. 안중근은 대한제국시기의 독립운동가로 국내에서 교육활동 및 국채보상운동 등에 앞장서다가 1907년 한일신협약으로 내정 권한을 일본에 빼앗기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이 되었다. 이후 함경도 등지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펼치다가 1909년 김기룡·엄인섭·황병길을 비롯한 12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회(斷指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李完用) 처단을 목표로 삼았다. 안중근이 처단하기로 한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서고 초대 조선통감을 지내면서 호시탐탐 우리나라의 국권강탈을 노리던 자였다. 이에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권총으로 그를 사살했다. 거사 직후 안중근은 즉시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어 일본 측에 인계, 1910년 2월 14일 사형언도를 받고 3월 26일 뤼순감옥의 형장에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광복 후인 1962년 안중근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데 이어, 1970년에는 국민의 성금을 모아 현재의 자리에 구(舊) 기념관을 개관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협소해짐에 따른 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으로 기념관 재건사업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2010년 10월 26일 현재의 기념관이 새로 개관하였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세워진 자리는 조선시대 국사당이 지어졌다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이 있었던 자리이다. 남산공원 입구에서 바라다보이는 남산도서관을 지나면 뒤편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유묵(遺墨)과 관련된 영상을 볼 수 있고,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체험실을 둘러볼 수 있다. 아울러 기념관 앞 광장에는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서 있고, 또 그가 남긴 유묵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2011년, 국가보훈처는 이 안중근의사기념관을 현충시설(제10-1-2호)로 지정하였다.
역사정보 1962 안중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1970 구 안중근의사기념관 개관 2005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위원회 발족 2010 새 기념관 개관 2011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제10-1-2호)로 지정
시대분류 현대/2010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전시, 관람시설/전시관(장)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91(남대문로5가 47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시작일(발생일) 2010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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