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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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정보 | JGH_001256 / 남묘 터 | ||
* 명칭 | 남묘 터 | 이명칭 | 남관왕묘 터(南關王廟 터) |
개요 | 남묘(南廟) 터는 관우(關羽)를 모시던 사당인 남묘가 자리했던 곳이다. 서울에는 관우의 사당이 동서남북 4군데 있었는데, 남쪽의 숭례문 밖에 있는 사당을 ‘남묘’라고 불렀다. 남묘는 광복 이후 민간단체에 불하(拂下)되어 본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1979년 대우빌딩과 힐튼호텔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사당동으로 이전되었다. | ||
설명 | 남묘(南廟)는 관우(關羽)를 모시던 동서남북 4곳의 사당 중 남쪽에 있던 사당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관우를 전쟁에서 도와주고 재산을 늘려주는 신으로 신성하게 여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장수들의 주도로 관우 사당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남묘는 임진왜란 중이던 1598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장수 진인(陳寅)은 일본군의 주진지인 울산성으로 집결하여 섬멸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일본군의 결사항전에 오히려 명군과 조선군이 포위되었다. 그때 관우가 나타나 포위망을 풀어주었다. 진인은 관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부상치료를 위해 머물던 서울 숭례문 밖 거처의 후원 위쪽에 관우의 조각상을 모셔 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명나라로 귀국한 후 신종(神宗)에게 진언하여, 신종과 선조의 명령으로 관왕묘, 즉 남묘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것이 서울에 최초로 만들어진 관우의 사당이자 우리나라 관우 신앙의 시발점이다. 1601년(선조 34)에는 왕명으로 흥인지문(동대문) 밖에 동묘(東廟)가 세워졌다. 이후 1883년(고종 20)에는 성균관 뒷산에 관우 사당을 만들어 북묘(北廟)라 했고, 1902년(광무 6)에는 서대문구 천연동에 서묘(西廟)를 건립하였다. 북묘와 서묘는 일제강점기에 동묘로 합쳐졌다. 남묘는 광복 이후 민간단체에 불하되어 본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1월,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대우빌딩과 힐튼호텔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사당동으로 이전되었다. | ||
역사정보 | 1598 남묘 건립 1979 사당동 이전 | ||
시대분류 | 조선/1598 | ||
주제분류 |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 ||
지번주소 | |||
도로명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530 GS주차빌딩 앞 |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 ||
시작일(발생일) | 1598년 |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