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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244 / 팔레호텔 터
* 명칭 팔레호텔 터 이명칭 프랑스호텔(France Hotel), 프렌치호텔(French Hotel), 법국여관(法國旅館), 센트럴호텔(Central Hotel), 패리스호텔(Palace Hotel)
개요 팔레호텔(Hotel du Palais) 터는 1901년경 대한제국 시기에 설립된 팔레호텔이 있던 곳이다. 경운궁(慶運宮, 현 덕수궁) 바로 앞에 위치한 2층 높이의 벽돌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화재 발생 이후, 1907년 센트럴호텔(Central Hotel)로 재개업하였고, 1908년 호텔을 확장하면서 패리스호텔(Palace Hotel)로 명칭을 바꾸었다. 설립된 지 10여년 만에 철거되었으나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설명 팔레호텔(Hotel du Palais) 터는 1901년경 대한제국 시기에 설립된 팔레호텔이 있던 곳이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조선의 숙박시설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자국의 공사관이나 영사관에 묵는 것을 관례로 여겼다. 그만큼 당시 조선은 고급 숙박시설인 호텔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우리나라에서 ‘호텔’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것은 바로 대안문(大安門, 현 덕수궁 대한문) 앞의 팔레호텔(Hotel du Palais)과 서대문정거장 부근의 스테이션호텔(Station Hotel)이었다. 1880년대부터 인천지역에서는 호텔이 성업 중이었지만, 수도 서울에 서양식 호텔이 들어선 것은 이때가 거의 처음이었다. 일반적으로 서울 근대 서양식 호텔의 효시로는 손탁호텔(Sontag Hotel)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대한제국 황실에서 운영한 특정호텔이었고, 건물신축이나 호텔 영업개시도 팔레호텔보다 늦었다. 팔레호텔의 설계와 건축과정에 대해서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다만 당시 사진을 보면, 2층 높이의 벽돌 건물에 1층에는 잡화점을 겸하여 설치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팔레호텔을 이용한 외국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호텔에 목욕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불편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팔레호텔은 1905년 2월 화재가 발생하면서 일시 영업중단에 들어갔다가, 1907년 3월 센트럴호텔(Central Hotel)로 명칭을 바꾸어 재개업했다. 그리고 1908년 5월에 호텔을 확장하여 다시 개업하면서 이름을 패리스호텔(Palace Hotel)로 바꾸었다. 팔레호텔의 철거과정에 대해서도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1912년 이후 일제에 의해 실시된 태평통(太平通, 지금의 태평로) 확장공사 때 함께 헐린 것으로 추정된다. 팔레호텔은 고종이 거처하던 경운궁(慶運宮, 현 덕수궁) 바로 앞에 자리하였다.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셈이다. 비록 호텔은 불과 1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역사정보 1901년경 팔레호텔 설립 1905 팔레호텔 화재사건 1907 센트럴호텔로 명칭을 바꾸어 재개업 1908 패리스호텔로 명칭을 바꾸어 확장 개업 1912 태평로 확장공사로 철거 추정
시대분류 대한제국/1901년경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 357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
시작일(발생일) 1901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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