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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239 / 덕수궁 포덕문
* 명칭 덕수궁 포덕문 이명칭
개요 덕수궁(德壽宮) 포덕문(布德門)은 원래 덕수궁 동쪽 대한문 위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소실되었다. 포덕문 현판이 한때 덕수궁 서쪽의 평성문(平成門)에 붙어 있어 평성문이 포덕문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다. 현판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설명 덕수궁(德壽宮) 포덕문(布德門)은 원래 사적 제124호 덕수궁의 동쪽 문인 대한문(大漢門) 위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소실되었다. 포덕문의 현판은 덕수궁 서쪽의 평성문(平成門) 자리에 붙어 있다가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포덕문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없다. 1899년(고종 36) 황의수(黃義秀)라는 천주교 신자가 포덕문을 지나 함녕전(咸寧殿, 덕수궁의 침전)에서 포교를 하다 붙잡혀 교수형을 당한 일이 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덕수궁의 서쪽 미국대사관저와 마주보고 있는 평성문에 한때 포덕문 현판이 걸려있었기에 일부 안내문에는 평성문이 포덕문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평성문은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당시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 중명전(重明殿, 서양식 별채)으로 피신할 때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10년 제작된 경운궁(덕수궁) 평면도를 보면 평성문은 지금의 포덕문 자리보다 남쪽에 있었다. 포덕문 북쪽은 1907년 순종(純宗, 1874~1926, 재위 1907~1910)의 황제 즉위식이 있었던 돈덕전(惇德殿)이었다. 돈덕전은 1922년 고종 승하 후 3년 만인 1922년에 일제에 의해 현재의 덕수궁 돌담길이 뚫리게 되면서 철거되었다. 포덕문에서 ‘포덕(布德)’은 ‘은덕을 널리 베푼다’는 의미로, 《노어(魯語)》 4편에 “백성들에게 은덕을 널리 베풀어 그 정사(政事)를 고르게 한다”고 한 용례가 있다. 또 평성문의 ‘평성(平成)’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조화된다’는 의미로, 《서경(書經)》에 나오는 ‘지평천성(地平天成, 땅이 다스려짐에 하늘의 일이 이루어진다)’에서 따온 말이다. 평성(平成)은 현재 일왕 아키히토[明仁]의 연호로도 쓰인다.
역사정보 1593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온 뒤에 경운궁을 임시거처로 함 1904 경운궁 대화재 1907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개칭
시대분류 조선/미상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정동 5-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미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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