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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228 / 이시영 집터
* 명칭 이시영 집터 이명칭
개요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집터는 만주 신흥강습소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크게 기여한 이시영의 자택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중구 명동13길 27-5 일대에 해당한다. 현재 가옥은 멸실되었고 그 자리에 건물 등이 들어서 있다.
설명 이시영(李始榮, 1869~1953)은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서울 출신으로, 1885년 관직에 나아가 형조좌랑(刑曹佐郎)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895년 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이회영(李會英, 1867~1932)과 신학문 탐구에 몰두하였다. 1905년 외부 교섭국장에 임명되었으나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계기로 사직하였다. 1906년 평안남도관찰사, 1907년 중추원의관, 1908년 한성재판소장 등을 역임하면서 안창호(安昌鎬)·전덕기(全德基)·이동녕(李東寧)·이회영 등과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국권을 빼앗긴 후 신민회의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 계획에 따라 6형제의 가산을 정리하여, 1910년 말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추가가(鄒家街)로 가족을 거느리고 망명하였다. 1911년 4월 유하현 삼원보 대고산(大孤山)에서 군중대회를 개최하여 경학사(耕學社)와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1912년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 토지를 매입해 신흥강습소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로 확대·발전시켰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북경에서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법무총장과 재무총장,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와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통치에 반대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대한제국관원이력서》에는 한성(漢城) 남서(南署) 명례방(明禮坊) 저동계(苧洞契) 제64통 제1호로, 《국외에서의 용의조선인명부》에는 경기도 경성부 황금정 2-164번지로 이시영의 본적지 주소가 기재되어 있는데 동일 장소로 추정된다. 현재 가옥은 멸실되었으며 그 자리에 향린교회와 주차장, 한마음오피스텔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역사정보 1869 이시영 서울 출생 1885 형조좌랑 등 역임 1905 외부 교섭국장에 임명, 을사늑약으로 사직 1907 비밀결사 신민회 조직, 국권회복운동 전개 1910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에 6형제가 가족을 거느리고 망명 1912 통화현 합니하에 토지 매입, 신흥강습소를 신흥무관학교로 확대·발전 1948 대한민국 초대부통령 당선 1962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시대분류 대한제국/1910년 이전
주제분류 문화/인물/생가(터)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3길 27-5(을지로2가 164-1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2가
시작일(발생일) 1910년 이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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